‘천국 우주시 지구동 천안공원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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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의 독서이야기]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 <살아갈 날들...>의 표지
ⓒ 화니북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제목을 읽는 순간, 그렇고 그런, 자기 살아온 삶이 제일 낫다는 주장을 위한 글이구나 싶었다. 고리타분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책은 선물용으로는 제격이긴 하겠다. 그 누구도 나쁘다고 할 구절이 없으니. 반납되지는 않을 책, 그렇다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책은 못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한 이들은 참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말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이 통속적인 제목처럼 내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개인적으로 내 취향의 책은 아니지만 정말 보고싶은 책이 이미 대출된 상태여서 이냥저냥 집어들었다. 가을이니까.

내 취향이 아닌 책을 소개한다?

11명의 지은이들을 훑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를 그들 모두로부터 받고 싶어지다니! 그렇구나. 부제에도 말했듯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한 메시지들'의 집합이 되긴 하겠구나. 그러면서도 또 다른 속된 마음, 이런 분들, 이렇게 모으면 책 잘 팔리겠구나, 싶은 사심이 들기도 했다.

내용을 채워 주신 분들을 소개하자면, 윤구병, 이현주, 이해인, 김훈, 서진규, 도법, 정호승, 김용택, 김승희, 장영희, 최일도님들이다. 김훈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는데 역시 이 책의 밋밋한 제목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분은 여기서도 눈에 띈다.

그의 모남이 어디엘 가나 눈에 밟힌다. 하지만 난 그래서 그 이상한 흥분감을 불러일으키는 그가 좋다. 모호하고, 때론 거침없고, 장황하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많은 수식어가 필요한 그의 문체와 기발한 상상력이 좋다. 여기서는 좀 쉽게 전달해 주겠지 싶은 기분, 반은 틀리고 반은 맞았으니 무리는 없는 셈이다.

우연히 만난 '나무와의 대화법'

본문에서 내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신 분은 또 있다. 이현주님과 장영희님이다. 목회자이며 시인인 이현주님의 '대나무를 구우며'와 '임자 있는 몸'은 새로운 인상을 내 맘 속에 새겨주었다. 대금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선정하는 절차는 가히 경이롭기까지 하다.^

먼저 눈으로 나무를 고른 다음, 악기로 몸을 바꿔 볼 뜻이 있는지를 그 나무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조용히 묻고 고요히 기다리면 대답이 온다. 예 또는 아니오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다.

대답을 좀더 쉽게 듣기 위해 나무를 손으로 잡고 묻는다. 나무의 대답은 내 몸을 통해서 온다. 내 몸이, 말하자면 나무의 입이 되고 메신저가 되는 셈이다. 내 몸이라고 했는데 좀더 자세히 말하면 내 숨결이다. '내 숨결이 아니라 숨결의 나'라고 해야 옳다. (대나무를 구으며- 이현주)

대나무와의 교감은 좀 다른 뜻이지만 물아일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대나무와 내가 다르지 않음, 인간은 움직이는 자연물이고 대나무는 한 자리에 서 있다는 그 한 가지 차이만이 다르면 다를까. 나도 다음에 숲을 산책할 때 늘 보아오는 나무에게 말을 걸어 볼 참이다. 어쩌면 오랫동안 그 나무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했을 뿐.

'임자 있는 몸'이란 또 다른 글도 나를 놀랜다. 이 글은 어떤 설교문보다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설교문에 비교한 것은 그가 목회자라는데 기인하며 여기서 임자란 다름 아닌 기독교의 신을 말함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도 결코 뜨거운 성령의 체험(기독교적 언어)은 고사하고 미지근한 일말의 양심으로 교회의 자리 한 칸을 메워오던 나였다. 이현주님의 단호한 고백은 비록 거듭남은 아니지만 내 신앙을 한 단계 높이는 단초를 마련해 줬다.

내 몸이 그분 것이니 그분 허락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사탄은 물론 천사까지도) 내 몸에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러니 병인들 어찌 나를 함부로 건드릴 수 있겠는가? 죽을병이 아니라면 그건, 다른 모든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전하기 위해 온 메신저 일 것이다.

나는 병을 치료하는 것과 동시에, 아니 그보다 먼저 또는 그보다 더 신중하게, 병을 통해서 전달받아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깨닫고 필요한 조처를 모두 마치면, 우편물을 배달한 집배원이 돌아가듯 병은 스스로 나를 떠날 것이다. 나는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을 것이다.( 임자 있는 몸- 이현주)

이 확고한 신념의 근거는 신앙의 힘에서 비롯됨을 느낄 때 목회자로서의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 글을 적는 이유, 장영희님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바로 20년 늦은 편지의 장영희님의 글 때문이었다. '천국 우주시 지구동 천안공원묘지 백조단지 10'으로 적힌 주소는 고인이 되신 그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때늦은 편지다.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처지로 반강제로 학교에서 어버이날에 쓴 편지를 빼놓고는 단 한 번도 아버지께 내 마음을 적은 글을 보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글 맨 앞의 주소란은 신선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저릿했다.

물리적 개념의 시간과 공간의 허상이 와 닿았다. 특히 그녀가 인용한 영화 '조디 포스터'에 나오는 대사 '아들아, 내일 보자'라는 대사는 내 가슴 한복판을 후벼팠다. 고인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할 수 있는 통찰. 인간의 감정에 따른 시간 개념으로 수십 년을 앞당긴 '내일'. 잊혀지지 않으면 죽은 것이 아니다란 말로 확인될 수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녀처럼 떠난 아버지의 믿음처럼 '아버지를 뵐 때까지 씩씩하고 용감하게 착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편지를 띄우고 싶다.

다시 한 번 제목을 읊조린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정말 끝 부분은 기도가 된 것 같다. 그렇담, 이 책의 제목은 내게 앞에서 언급한 나의 섣부른 판단과는 다르게 잊혀지지 않을 만큼 성공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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