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를 거쳐 몰운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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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를 거쳐 몰운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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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길을 내며 말없이 우리를 인도하고

^^^▲ 을숙도 풍경
ⓒ 사진/int1477(포토네이버)^^^
날이 흐렸다. 하늘에선 성글게 빗방울을 흩뿌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어정쩡한 비였다. 하지만 길은 그새 젖어 있었다. 맞은편 골목에 세워둔 친구의 차,로시난테를 타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어깨에 맨 가방 안에는 뜨거운 커피를 가득 채운 보온병과 카메라,메모장 등이 들어 있었다.친구는 먼저 차에 타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친구의 애마인 '로시난테'(돈키호테가 타고다니던 말 이름)를 타고 골목을 벗어나 도로 위에 올려 놓았다.

가끔 즐겨 가곤했던 해운대를 거쳐 송정을 지나 쭈욱 드라이브를 하던 곳을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얼마 전에 몰운대를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그동안 서로 바빴던 까닭에 가보질 못하고 있다가 오늘은 기어코 가자고 마음을 낸 것이었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면 바로 탁 트인 하늘과 바다,그리고 아기자기한 꽃들이 길가에서 미소로 반기곤 하던 늘 가던 곳이 아닌 낯선 곳으로 향하는데 어쩐지 좀 삭막한 느낌이었다.

동서 고가도로 위에 우리의 로시난테를 올려놨는데 요즈은 이 로시난테가 나이가 많아서 자꾸만 관절통을 호소하곤 하는데 잘 가다가 덜컥 덜컥하고 소리내며 움직이면 긴장하게 되었던 까닭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먼 길까지 갈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앞서 가던 두대의 차가 가벼운 충돌이 일어나 안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더 걱정을 가중시켰다.이러나 저러나 우리의 로시난테는 동서고가도로 위로 잘 달렸다.

대형 트레일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더욱 위협적이고 불안한 마음이었다.거기에다가 그 주변 풍경까지 삭막했다.푸른 나무들이 보이지 않는 길과 공단지역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 전체적으로 회색빛이었다.날씨마저 흐려서 더욱 그래보였다.^

그냥 돌아갈까? 하고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의 애마인 '로시난테'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기름값도 안주면서 친구보고 멀리까지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기도 했다.

한편, 나는 싱그러운 나무들과 바다와 길가에서 반기던 아기자기한 꽃들의 인사와 푸른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한 산과 들,흙내음과 바람소리,물소리가 그리웠다.

'그럴까?하는 표정이던 친구가 가던 길을 계속 달렸다. '기왕 나왔으니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가보자.개척자의 정신으로!'하고 말했다.언제부터인가 친구는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낯선 길을 만나면 '가지 않은 길로 가볼까'하며 낯선 길에 선뜻 들어서곤 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건 원래 내 말이었다.프로스트의 시'가지 않은 길'을 즐겨 외던 나는 이따금 길이 없다면 길을 내면서라도 가면 되지.가지 않은 길이라도 가면 되지...하고 말하곤 했다.길을 가다 길이 끊어진다면,혹,여기부터는 길이 아님'이라고 적혀 있다면 길을 내면서 가면 되지'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친구는 닮아가나보다.가까운 사람은 항상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면서 닮아 가나보다. 어느새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이따금 놀라곤 하는데 내가 말하고 잊어버린 오래 전의 말을 친구가 어떤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것이 서로에게 익숙된다는 것이고,길들여진다는 것인가보다.이 친구는 참 편안하다.편안하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뜻이고,익숙하다는 것은 서로가 길들여졌다는 것이다.

로시난테는 나이가 9살이 넘는 친구의 애마인데 차가 없는것 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하고 타고 다니건만, 요즘은 심한 관절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길을 쭉 잘가다가도 덜컥 덜컥 소리내며 놀래키는 바람에 이따금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그래도 어쨌든 아직까진 잘 굴러간다.

차는 잘 굴러가면 되는 것 아닌가.갑자기 도로위에서 고장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말이다.힘내라 로시난테! 자 좀 멀리가야 하니까 분발해야지.

말만 들어오던 철새들의 도래지 을숙도에 당도했다.바람은 더 거칠게 불고 있었고,아주 가는 비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낙동강 하구둑 기념탑'아래 우리의 로시난테를 세웠다. 기념탑 근처에는 수자원공사 건물이 높이 서 있고,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 들어가서 우리는 컵라면에 김밥을 시켜 먹었다.

우리가 컵라면을 먹노라고 앉은 탁자 뒤쪽에서 주인 여자는 뜨게질을 하며 바깥에서 봉봉을 타고 있는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남학생들을 지켜 보면서 앉아 있었다.끊임없이 솟아나는 에너지를 어디로 표출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애들은 봉봉을 타면서 에너지를 쏟아놓고 있었다.

기어코 다 쏟아내고 가리라고 결심이라도 한듯 높이 뛰어 오르고 공중재비를 돌아 다시 착지하며 또 봉봉 뛰면서 몸싸움도 하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을숙도는 부산의 사하구 하단1동과 하단2동에 걸쳐 있으며 낙동강 하구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하중도로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한때는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다고 한다.

1966년 천년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며,낙동강 하구둑의 완공으로 섬전지역이 공원화 되면서 대부분의 갈대밭이 훼손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져 철새가 줄어들고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어 부산시는 을숙도 개발계획을 백지화하고 이 일대를 핵심 보전 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을숙도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들어갈 수 없게 했는지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우리는 휴게소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로시난테를 타고 그 부근을 한바퀴 돌고 나왔다.낙동강 하구둑이 저만치 보였다.우리의 로시난테는 길을 따라서 우리를 몰운대로 데려가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물빛 또한 칙칙한 빛깔이었다. 다대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것이 보이는 공터에 우리의 로시난테를 세웠다.공터 맞은 쪽에는 횟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 몰운대 전경
ⓒ 사진/몰운대 가이드^^^

몰운대 입구 초입에는 '몰운대 지형과 소개글이 게시되어 있었고,그 맞은편 왼쪽 저만치에는 '몰운 커피숍'이 있었다. 몰운대는 개인 사유지며 몰운 커피숍은 주인이 직접 하는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파른 경사길을 우리는 올라갔다.공공 근로자들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길가에서 일을 하다가 쉬고 있었다.

힘차게 높이 뻗은 해송들이 인상적이었다.하나같이 높게 쭉쭉 잘 뻗어 있는 해송들이 길가에 쭉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숲에서 이따금 새소리가 들려왔다.길게 잘 뻗은 나무들 가운데 한 나무가 유독 눈길을 끌었는데,독립적으로 잘 뻗어 오른 나무들 사이에서 한 나무가 맞은 편의 나무에게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맞은편으로 기울인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안간힘을 다해 맞은편으로 몸을 귀울여서 기어코 맨 윗가지에서 겨우 맞은편의 나무의 손을 잡고 있었다.닿고 말거야 난 너에게 닿아야 해'하며 안간힘을 쓴 모습...안타까운 몸짓으로 겨우 닿은 손과손.내가 그렇게 손유희까지 하며 표현하자 친구는 말하길,

'아니 옆에 나무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 먼데 맞은편에까지 닿으려고 한다냐?'
'그야,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였겠지.'
하고 말하자 친구는 싱겁다는 듯 웃었다.

이곳의 수목의 주종은 해송이지만 그 외에도 90여 종의 나무 종류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좁지도 넓지도 않는 한적한 길을 따라 우리는 걸어 올라갔다. 친구는 마치 잘뻗은 해송처럼 자세 하나 흐트리지 않은 곧은 자세로 길을 걸었다.내가 걸음이 조금 처졌다.아이 숨차.

길은 길을 내며 말없이 우리를 길로써 인도하고 있었다. 길은 길로써 말하고 있었다. 군사차량 외에 외부 차량은 이곳에 들어 올 수 없어서 그런지 더욱 깨끗하고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는듯 했다.휴지통조차도 없었다.

그야말로 자연그대로를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매점이나 장사치들도 볼 수 없었다.최대한 훼손 시키지 않은 그대로를 유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곳곳마다 배여 있었다.

산마루에 이르자,옛날에 왕을 향해 망배를 올리거나 외국의 사신을 영접했다는 정자(?)가 나무에 둘러싸여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근처에는 공중 전화부스가 두개 나란히 있었다. 하늘색 옷을 입고 서 있는 공중전화 부스.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하고싶게 만들었다.

더 걸어 내려갔다.얼마쯤 갔을까 좁은 길을 따라 가는데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면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의 위용, 그 아래 자갈밭,그리고 탁 트인 바다.

바람이 바로 앞에서 내 가슴께로 달려 들고 있었다.기암괴석들로 벽을 두른듯한 그 위로 우거진 숲과 그 위로 펼쳐진 하늘,아래로는 푸른 바다...장관이었다. 학이라도 내려 앉을 듯했다.

부산의 3대라고 하면,태종대,해운대,몰운대를 말하는데 몰운대는 이 3대에 속한다. 이곳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해천만리의 바다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바다...

아찔한 어지럼증은 잠시,보이지 않는 깃발처럼 펄럭이는 바람을 맞으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었다.

아쉬움을 안고 되짚어 걸어 내려오는 길에서 몇몇 사람들이 마주 오고 있는것을 보았다.네명의 중년의 여자들과 남녀 한쌍이었다.

언제든지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 가야만 하는 길에는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다음에 또 와봐야지...꼭 한번더 와서 천천히 몰운대의 마음을 읽고 마음 느긋하게 깊숙한 곳곳마다 발걸음을 옮겨보면서 걸음과 마음이 하나되어 걸어 봐야지...생각했다.

그게 언제일런지는 모를 일이다.또한 다시 오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인것이다.그러고보면 우리는 그다지 많은 땅을 밟아보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 가는것 같다.대부분 일상적인 공간과 그 주변에서 맴돌며 살아간다.아무리 세상이 넓다 하여도 내가 닿지 않은 그 곳은 미지의 땅일 뿐이다.

지금 이렇게 새로운 처녀림을 발견한 듯한 기쁨으로 밟고 있는 이곳을 또 어떤이들은 자주 혹은 가끔은 와 볼 것이다. 우리는 발 아래 밟히는 잔잔한 자갈돌 소리를 들으며,숲 사이로 흐르는 바람과 새소리,잘 손질된 길...그리고,길이 끝나는 곳에 있었던 전망대...그랬다. 길이 없는 것또한 길은 그렇게 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길이 없는 곳,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길 끝에서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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