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과 가출소녀 '팅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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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과 가출소녀 '팅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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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애국'을 다시 생각하며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중국인 '랑랑'.후진타오 방미 시 백악관 기념 만찬에서 중공군의 반미(反美) '진군가'를 연주해 파란을 일으켰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瀋陽)에서 태어난 만주족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郞朗, Lang Lang. 28). 지난 19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국빈으로 초대되었던 기념 만찬장인 백악관에서 그가 연주한 한 곡의 피아노 선율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양국 정상들과 귀빈들이 모인 파티장에 울려퍼진 6.25전쟁 반미(反美) 진군가.

그 진군가는 중국 영화 '상감령(上甘嶺)'의 주제곡인 '나의 조국(我的祖國)'이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중국의 인민군이 강원도 상감령에서 미군과 43일간 치열하게 싸운 끝에 미군에 승리했다는 선전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주제곡에서는 '조국을 향해 늑대들이 다가오고 있다'며 미군을 늑대에 비유한다.

랑랑은 만찬 직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백악관에서 연주할 곡으로 직접 골랐다."고 말했다. 또 연주 직후 자신의 블로그에 "수많은 외국인 앞에서 중국을 찬양하는 노래를 연주할 수 있어 행복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곡 연주 후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랑랑은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 "나는 정객이 아니다."라고 여론을 경계했다. 이후 대기원시보는 "랑랑이 '중청연'(中靑聯 - 中華全國靑年聯合會)의 부주석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폭로한 바 있다.

또다른 중국의 한 소녀 이야기가 있다. 중국 충칭(重慶)시의 모 중학교에 다니는 '팅팅'(??,가명)이라는 14살 소녀의 가출사건 전말이 그것이다.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에서 발행되는 남방주말(南方週末)은 이 어린 소녀가 가출하게 된 사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작년 11월, 팅팅은 자신의 어머니가 일본 혼다(本田) 승용차를 사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 항의하기 시작했단다. "왜 하필 일본 차냐?" ,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따지고 들던 팅팅은 결국 어머니가 일본차를 고집하자 급기야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3일 간 가출 중이었던 팅팅은 어머니가 마침내 일본차를 포기하고 국산(중국산)차를 사기로 마음을 바꿈에 따라 귀가하게 된다. 이 신문이 전하고 있는 팅팅의 가출 명분론은 바로 '국가적 존엄의 문제' 그것이었다.

당시 한 외신 언론매체는 "외국 가요나 아이돌 문화에 젖어 있어야 자연스러울 14세의 나이에 그런 가출이란, 놀랍다."라고 논평하기도 했다. 그렇다. 팅팅의 가출은 좀 심한 경우가 아니라 놀라운 경우가 맞다.

'랑랑'과 '팅팅'.
이 두 사람의 중국 젊은이는 애국심을 바탕으로 놀라운 용기와 당돌함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보자면 내심 부럽기까지 한 일 아닌가. 설마 그 정도까지야 하기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두 토막의 이야기다.

나는 랑랑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대는 한국전쟁의 진실을 아는가라고. 이 질문이 좀 상대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다고 하면, 다시 이렇게 물어 보고 싶다.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그대의 조상인 수 십만의 만주족 병사들은 과연 그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 지를 알고 압록강을 넘었을 것인가 말이다.

랑랑이 아무리 고상한 생각을 가지고 선곡을 했다손 쳐도 자신의 국가 원수가 초대받은 자리에서 그 집 주인을 모욕하는 일이란. 애국이 될 수 없다. 랑랑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진정 애국에 대해 깊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랑랑에게 '당돌하다.'란 표현은 적합치 않다. 랑랑은 선곡을 하면서 그 무엇인가에 붙들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아직 세상을 다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팅팅에게는 충고보다는 조금 더 세상을 경험하고 사유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과연 그것이 가정을 포기할 만한 일이었는가를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문제는 팅팅의 부모로서도 딸의 숨막히는 애국심에 자유로운 사유의 산소를 불어넣어 줄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다. 2006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한 한국 야구 대표팀이 애너하임 에인절스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당시 그 유치함에 대해 '뉴스타운'에 칼럼을 올린 바 있는 나로서도 미국 매체들에서 들려오는 '유치함'의 비판을 성가시게 느꼈던 기억이 있다. 애국심이란 게 그런 건가 보다 하고 개운치 않았었다.

애너하임의 태극기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애국심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거북하고 촌스러운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국심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 자유의지이다. 때때로 우리는 자기 내부로부터 애국을 강요당하는 우를 범하기가 쉬운 위험한 국수주의의 감옥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모든 초등학교(소학교)에서 이념교육을 실시하고, 아침 구보를 시키거나 공산당을 상징하는 빨간 스카프를 매고 기념사진을 찍는 학교가 많다. 그것도 하나의 문화이므로 그 자체를 뭐라 평할 수 없다. 다만 이를테면 일본을 대상으로 비판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이념적으로 편중된 교육을 하는 경우도 있어, 이는 반드시 '팅팅'과 같은 일탈을 불러올 수 밖에 없게 된다.

한국인, 또는 국제사회 역시 중국에 대해 일정 부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한 낯선 느낌이나 문화적 차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국 또한 국제사회의 모든 비판을 무작정 거부하려는 것은 대국의 자세가 아니다. 이를테면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한국인들이 한국 땅에서 티벳 문제를 들고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집단폭력을 행사한 것은 범죄 이전에 명백한 '무례'에 해당한다. 애국이 최선의 가치는 아니다. 그것은 '고구려' 문제를 놓고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우리가 그 시각차를 인정해 줘야 하는 경우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애국심이 무슨 문제인가. 또, 그것이 아무리 지나친들 무슨 허물이 될까. 문제는 그 정도에 있는 게 아니다. 그 애국심이란 게 표현된 결과가 아름답지 못할 때 우리는 '국수주의'(ultranationalism)나 '극우파'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애국심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라 '닫힌 논리'에서 시작될 때 이미 그것은 마음이 없는 공허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중국의 1970년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는 '흑묘와 백묘'(黑猫 白猫)만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제 쯤이면 회색 고양이나 보라색 고양이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케 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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