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함께 가서 네 몸에 맞게 직접 줄여달라고 하는 게 낫겠다" 랬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물쇠를 열어 자전거를 대문 밖으로 뺐습니다. 대문을 닫으며 딸이 냉큼 쫓아왔습니다.
"전 어디에 타야 되나요?" "응, 저 아래의 내리막길에서부터 뒤에 타렴~" 이윽고 (딸의) 딸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제가 끄는 자전거의 뒤에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자전거는 순간 휘청했습니다. 평소 58킬로미터의 날씬한(실은 빈약한) 제 몸무게에 그 육중한(?--> 딸아이의 몸무게는 기필코 비밀입니다!!)
딸내미의 몸무게가 얹혀진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비틀거리면서도 하지만 저의 기분은 썩(!) 좋았습니다.
최근 저의 가정경제가 몰락하여 승용차마저 처분하고 자전거를 탑니다. 하지만 승용차가 있을 때는 언감생심 금지옥엽 딸내미를 감히(!) 제 자전거 뒤에 태우리라곤 상상조차도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모를 게 인생길이요, 알 수 없는 게 불과 한 치 앞이라고 했던가요. 여하튼 많이 힘들어서 현재 저는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 전용도로'라고는 하지만 여기저기 돌출물이 많아서 딸은 몇 번이나 내렸다 올랐다를 반복하다가 그예 "차라리 걸어갈래요"라고 했습니다. 못내 아쉬우면서도 저는 기분은 좋았습니다.
40여년 전 제가 여섯, 일곱 살쯤 때일 겁니다. 당시 아버지는 당신이 타셨던 자전거의 뒤에 저를 태우고 고향시내를 줄달음치시길 즐기셨습니다. "저 상점의 간판 이름은?" "...... 순화반점요." "맞다! 에... 그럼 저 쪽 길 건너의 간판은?" "... 아리랑 다방요." "어이구~ 우리 아들은 역시 똑똑혀~!"
그렇게 아버지께서 칭찬을 해 주시는 날에 저의 기분은 그야말로 바람이 가득 차서 '하늘을 붕붕 나는 풍선'이 되곤 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연약한 저의 궁뎅이는 그 초라한 자전거로 인해 이미 죄 까져서 아프고 때론 진물까지 나곤 했지만요... '칭찬은 고래도 웃게 한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타거나 걷거나... 하면서 세탁소에 가서 딸의 옷을 수선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어서 '삼각김밥'을 두 개 사서 딸이랑 하나씩 나눠 먹었습니다.
"아빠, 되게 맛있어요!" "그럼 하나 더 사 줄까?" "아녜요, 아빠나 하나 더 드세요~"
이렇게 부녀(父女)지간의 정은 더욱 새록새록 깊어갑니다. 그치만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당신의 자전거 뒤에 저를 태우시고 즐거워하셨던...
뭐가 그리도 바쁘셨길레 18년 전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하는 그 길로 가셨는지 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보태 제 딸과 군인 간 아들을 키우렵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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