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좀 그만 먹어!
스크롤 이동 상태바
밥 좀 그만 먹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고마비라는데 저도 살이 찝니다

날씨가 쌀쌀해진 것이 이제 가을도 고개를 넘어 가나 봅니다. 올해는 23년만에 쌀 수확량이 최저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저희 집에서는 '밥 좀 그만 먹어'라는 아내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옵니다.

필자가 아직 원기 왕성한 20대인데다가 날씨 또한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는지라 말이 살찌듯 필자 또한 가을 들어 살이 찐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밥이 어찌나 맛있는지 김치만 있어도 밥이 절로 넘어갑니다.

그러다보니 20Kg 쌀을 팔아 놓은지가 한달이 채 되기도 전에 쌀이 동이 나 버렸습니다. 식구라곤 아내와 저, 그리고 밥 먹기를 아주 싫어하는 4살된 딸아이가 다인데 말입니다.

자격지심이겠지만 아내가 절 보는 눈이 꼭 짐승 보듯 합니다. '저런 돼지'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변명을 늘어 놓습니다. 그건 아마 주말마다 놀러 오는 친구 녀석 때문일거라고. 하지만 친구는 한달 전에도 왔었고, 석달 전에도 왔었습니다. 그러기에 요 한달새 쌀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한가지 더 변명을 해봅니다. 아마 반찬이 신통찮아서 찬 대신 밥을 많이 먹어서 그랬을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먹히질 않는게 우리 집 밥상이 갑자기 달라졌을리도 없고 오히려 추석이다 뭐다 해서 더 푸짐했다는 것입니다.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당장 쌀을 팔아 올려니 그렇게 돈이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들구나'(?)하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하지만 밥은 먹어야겠기에 할인마트에 가서 가장 싼 20kg에 39,000원짜리 쌀을 팔아다 놨습니다. 그리곤 쌀 포장지에 사다 놓은 날짜를 기입했습니다.

살때는 돈이 아까웠지만 보일러실 한켠에 떡하니 들어 앉은 쌀을 보니 든든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왕성해진 식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니 대책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밥그릇을 작은 것으로 바꾸고 나니 오히려 그 조금씩 퍼먹는 맛이 더 큰지라 얼만큼 먹었는지 알 수도 없게끔 먹어버립니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하기엔 아직 키가 더 클 수 있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있기에 더더욱 안될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키우시느라 얼마나 쌀을 팔아다 놓으셨을지 생각하니 새삼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먹는데 아끼지 마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아파서 병원 가서 돈 쓰느니, 평소에 잘 먹고 건강한 것이 훨 낫다고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잘 먹자니 그게 여간 돈 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밥만 어거지로 먹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야속하단 건 아닙니다.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밥 차려주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지요. 저도 군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던 터라 매일 밥상 차리는 고충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군에서는 미리 짜여진 식단에, 매일 조달되는 물량이 있으니 오히려 더 마음 편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아무튼 아내의 밥 좀 그만 먹어라는 잔소리는 적당히 먹어라는 소리로 희석시켜 들어야겠습니다. 요즘 배가 조금씩 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아저씨 스타일로 가려는 듯한데 이참에 운동도 좀 해야되겠구요.

그러고 보니 만약 제가 비싼 밥 먹고 운동해서 배꺼준다면 아내가 좋아할지 의문입니다. 아마 절 낙관적 삶의 자세를 견지한 건전한 학생이자 남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등 따시고 배불러서 속된 말로 요강에 똥사는 놈으로 보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가을이 좋습니다. 가을의 눈부신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좋습니다. 밥도 좋습니다. 금방 해놓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한테 잔소리 해주는 아내가 있어 좋습니다. 철 좀 들어라고,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고 옆에서 소리 치는 이가 있어 좋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