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석'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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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를 거닐며

어려서 심부름으로 이집 저집을 다니거나,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면 마당에 돌들을 가득히 모아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집안의 어른들은 그 돌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며, 나에게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뭐라고 설명을 하곤 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말들이 내 기억에 남지 않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를 아껴주시던 선배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 선배를 통해서 나는 본격적으로 수석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마당에 가득히 쌓아 놓은 그 돌들이, 바로 ‘수석’이었다는 것도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수석을 주우러 다니는 과정을 ‘탐석’이라고 한다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다.

뭐든지 처음 배우는 것은 신기하기 마련이다. 나는 처음 선배가 보여주는 이런 저런 형상의 돌들에 대해 때로는 감탄을 하면서, 때로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열심히 배워보려고 애썼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진지성을 인정한 선배는, 그 때까지 보여주던 돌들과 조금 다른 돌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때 선배가 보여준 것들이야 말로 진짜 수석이었다. 당시 열심히 읽던 수석 책에 좋은 수석이라고 쓰여 있던 주름이 가득한돌, 구멍이 뚫린 돌, 오랜 세월 마모가 된 돌들이 비로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리고 말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과연 그런 돌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던 나는, 그 돌들을 보면서 ‘아. 이것이 바로 수석이구나’라고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선배의 집 벽장 안에서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돌들은 거의가 평소 잘 보기 힘들던 남한강 오석(검은 돌)들이었다. 단순히 형태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검은 오석들이 기기묘묘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게다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비늘(돌의 표피)마저 벗겨진 것들을 보면서 감탄을 연속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선배는 장안에서 알아주는 대단한 수석 소장가였다. 선배가 소장하던 돌들이 눈에 익을 때가 되었을 무렵, 하루하루 늘어가는 내 눈을 만족시키려는 듯 선배는 나를 데리고 다른 소장가들의 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동안 주말시간을 완전히 날려야 했지만,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었다.

주말마다 유명하다는 소장가의 집을 선배를 따라 이집 저집 돌아 다녔다. 그러면서 그들이 소중히 보관하던 돌들을 한점 두점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좋은 돌을 보는 기회가 늘어가면서, 돌을 보는 식견도 나날이 높아져갔다. 그건 나에게 우연히 다가온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좋은 돌은 숨겨져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손 탄다.” 수석 애장가 들은 그런 말을 사용하곤 했었다. 자신들이 정말 아끼는 돌을, 어지간해서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었다. 좋은 돌들은 가격이 정말 엄청나게 비쌌었다. 그렇게 거금을 들여서 장만한 돌을 누군가에게 큰마음을 먹고 보여주었는데, 그 돌을 언제 누구 집에서 보았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서로 좋은 돌은 가급적이면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서로 인정해주는 소장가들 끼리 서로의 돌을 보여주고 보고 하는 것이 상례였다. 돌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돌의 흠을 잡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오랫동안 돌을 이모저모 쳐다보고는 ‘잘 봤습니다.’ 한 마디 정도는 꼭 하는 것이 예의였다. 설사 그 돌이 엉터리였다 할지라도. 소장가에게는 그 돌이 그 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석문화가 이토록 폐쇄적이기 때문에, 수석을 배우는 과정은 무척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자신이 소유한 좋은 돌이 없으면, 남의 좋은 돌을 구경할 기회가 드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업료를 내야만 좋은 돌을 볼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고, 좋은 돌을 가져야만 다른 좋은 돌을 볼 수 있는 것이 그 세계였다. 서로가 남들이 보기 쉬운 곳에는 손을 타도 괜찮은 그저 그런 돌만 놓아두었다. 그래서 수석의 세계에는 사기꾼이 많았다.

돌 마다 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가격이 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수석의 세계가 정보의 교류가 차단당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좋은 돌을 서로 돌려보면서 장단점을 충분히 토론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새로 수석의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은 그 돌이 얼마의 가치가 나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돌을 사거나, 자연 상태의 돌처럼 가공한 ‘손댄 돌’을 진품인줄 속아서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선배는 주말이면 차를 타고 남한강가로 나가기를 좋아했다. 직접 돌을 찾는 ‘탐석’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종일 허리와 고개가 아프도록 자갈밭을 뒤집고 다녀도 마음에 드는 돌 비슷한 것도 하나 찾기가 어려웠지만, 선배는 그 돌밭을 헤집고 다니면서 그렇게 즐거워 할 수가 없었다. 좋은 돌을 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비싼 돈을 지불해야만 보는 돌보다는 이렇게 강가를 거닐며 직접 돌을 찾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몽돌’에 불과한 것을 선배는 이리저리 각도를 잡아가며 “이봐, 그렇게 보면 아기를 않은 어머니 모습 같지 않아?” 라며 채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 같은데요.”라며 얼떨결에 잘못 대답이라도 하는 날에는 선배는 “그렇지? 내가 돌을 보긴 잘 봤어.” 라며 기쁨에 들뜨곤 했었고, 나는 또 대포 집으로 끌려가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물론 “아닌데요.”라고 하면 선배의 그 허망한 얼굴표정을 보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의 탐석여행에 끌려가는 날이면, 아예 대포 집까지 한 코스를 마칠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선배가 “이 돌 어때?”라고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우와 진짜 멋집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아이처럼 어쩔 줄 모르게 좋아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 나도 아이처럼 즐거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선배의 모습에 이끌려 한동안 강가를 거닐며 돌 틈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었다. 나에겐 탐석은 체질에 맞지 않는 취미였지만 그런 기회에 강가를 거닐어 보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오래 강가를 거닐 수가 없었다. 선배가 낮에 얼굴을 검게 그슬려가며 돌밭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나는 미리 준비한 책을 들고 차 그늘에 기대고 않아서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다시 선배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돌을 주우러 다녀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한점도 마음에 드는 돌을 줍지 못했다. 그러면 선배는 자신이 소중하게 주운 돌중에서 하나를 아까운 표정으로 주면서 “잘 간직해. 그 돌 정말 좋은 거야.”를 되풀이했다.

나는 초로의 나이인 선배가 그렇게 아이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강가를 따라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강가에서 선배를 따라 말없이 돌밭을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았고, 선배가 주워서 가져오는 돌을 보고 “아 그 돌 참 신통하네요.”라고 맞장구를 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강가를 바라보며 서 있으면 왠지 알 수 없는 시원함이 가슴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당시 선배와 가까웠던 한동안 선배의 강권에 못 이기다시피 하며 강가로 끌려 다니곤 했던 시절이 가끔씩 생각이 난다. 내 나름의 생활에 충실하고자 세워놓은 계획을 망가뜨려버리곤, 내 손을 억지로 끌고 함께 나서곤 하던 강가에서 사람 좋은 선배와 또 자연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선배의 강권이 없었다면 나 스스로는 결코 시간을 그렇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내었던 그 시간들이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귀중한 추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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