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체제전복 혐의로 수감 중에 이번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됐다. ^^^ | ||
1970년 노벨위원회는 소련의 반(反)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해서 소련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소련은 결국 1974년에 솔제니친을 국외로 추방하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 솔제니친은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 머물다가 1975년 여름에 전미(全美) 노조(AFL-CIO) 조지 미니 위원장의 초청으로 워싱턴을 방문해서 연설을 하게 됐다. 그의 워싱턴 연설은 소련 공산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솔제니친이 AFL-CIO의 초청을 받아 연설할 장소는 백악관과 몇 블록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잭 캠프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 등 공화당 보수파 정치인들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솔제니친을 백악관에 초청해서 면담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소(對蘇) 강경파인 헨리 잭슨 상원의원이 포드 대통령이 솔제니친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포드 대통령은 솔제니친을 백악관에 초청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포드는 솔제니친을 경멸했다고 한다. 포드 대통령이 이런 태도를 취한 데는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영향이 컸다. 브레즈네프와 ‘해빙(데땅트)’에 몰입해 있었던 키신저는 포드가 솔제니친을 만나면 브레즈네프를 화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키신저는 각료들에게 솔제니친 환영만찬에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뉴욕타임스는 “포드 대통령은 해빙과 유화(宥和)를 혼동하고 있다”고 사설로서 비판했다. 키신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슐레징거 국방장관 등 몇 명의 각료가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1976년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 출마한 로널드 레이건은 솔제니친을 면담하기를 거부한 포드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애석한 표차로 포드에게 패배했다.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지미 카터는 솔제니친과 면담하기를 거부한 제럴드 포드를 몰아 붙였다. 그해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포드는 전에는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경량급 정치인 카터에게 패배했다.
그 후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헨리 키신저가 생각했던 식으로 동서해빙을 통한 ‘평화’는 오지 않았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카터는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불렀고, 고르바초프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레이건이 외교를 잘 모른다”고 비난을 퍼부었고, 언론인 헤인스 존슨은 레이건을 ‘몽유병 환자’에 비유했다. 그리고 1989년 늦가을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소련도 붕괴했다. 북한의 3대 세습과 중국의 반체제인사 류사오보에 대한 노벨평화상 수여 소식을 듣고 나니 35년 전 솔제니친의 워싱턴 방문에 얽힌 스토리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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