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서 한 가지 '낙'이 있다면 우편 배달부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는 겁니다. 아저씨가 오는 시간은 대중이 없습니다. 좀 빨리 오면 오후 3시, 늦으면 오후 5시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오토바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 기다리다가 캄캄해진 밤이 되어서야 미련을 접었습니다.
제가 배달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은 꼭 받아야 할 편지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인 편지를 받아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받아 보는 대부분의 우편물들은 5분 내에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들 뿐입니다.
제가 하루종일 기다렸던 것은 '신문'이었습니다. 물론 새로운 소식을 접하려면 컴퓨터를 켜도 되고, TV를 켜고 뉴스 채널을 보아도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문이 보고 싶습니다. 이것 저것 많이 먹고도 밥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밥을 먹어야 배가 찬 것 같다나요. 신문을 기다리는 제 마음이 그런 경우입니다.
신문이 온 것은 다음 날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원래는 '조간신문'을 '석간신문'처럼 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제신문'을 '오늘신문'처럼 보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섬'에 살고 있으니 환경에 맞춰 살아야지요.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악 악 악 여보" 하는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용하던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 같았습니다. 소리를 지르던 아내는 급하게 의자 위로 올라 갔습니다.그리고 두 딸들도 책상 위에 올라가서 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저는 "뭐야, 무슨 일이야, 소리만 지르지 말고 말을 해야지"하고 신경질만 부렸습니다. 그제서야 아내는 "내가 서 있는데 쥐 한 마리가 지나갔어"하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작은 딸 모영이는 아예 눈물을 보이면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제 눈에 쥐 한마리가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쥐란 놈도 어지간히 재수 없습니다. 하필이면 도망가다가 끈끈이에 붙어서 바둥대고 있는 겁니다.
상황을 유추해 보면 이렇습니다. 쥐가 우리 집 사람 옆을 지나가다가 발각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소리를 막 지르면서 펄쩍펄쩍 뛰는 거지요. 그리고서 급하게 의자 위로 뛰어 올라 가는 겁니다. 문제는 쥐도 너무 놀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허둥지둥 도망을 가다가 쥐 덫에 발이 붙어버렸던 거지요.
이 쥐는 금년 들어 17번째 잡힌 놈입니다. 집 안에서 1년 동안 17마리의 쥐를 잡았으면 대단한 일 아닌가요? 우리 집은 쥐의 소굴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끈끈이를 사다 놓습니다. 1통에 2천 원인데 그 속엔 2개의 끈끈이 쥐덫이 들어 있습니다. 쥐 잡는 것도 돈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특별 예산을 세워야 겠습니다. 쥐 20마리를 잡는다 하면 최소한 2만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겁니다.
한 바탕 소란 끝에 집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TV를 보다가도 쥐가 나오면 질겁을 하면서 채널을 돌려 버리는 아내입니다. 전에도 여러번 "우리 나중엔 돈 벌면 쥐 없는 좋은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했던 아내에게 정말 미안한 하루였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갖고 있는 소망은 정말 단순합니다. 아파트를 몇 채 가졌으면 좋겠다거나, 아이들을 해외로 어학 연수 보내겠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쥐가 없는 깨끗한 집에 살면서 아침에 신문을 읽고 싶다'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인가요? 평범한 사람들이 소박한 꿈을 가꾸어 가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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