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이 되어서 맞는 아들의 첫 운동회라서 한껏 고무된 나도 조퇴를 하고 달려갔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가자 마자 퍼질러 앉아서 연신 술만 들이켰다. 이윽고 학생과 학부모의 다리를 묶고 달리기를 하는 종목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이미 만취한 나의 불상사를 우려하여 극구 말렸으나 나는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막무가내로 버텼다.
"나, 아직 술 안 취했어. 글구 나 달리기 잘 한다구~" 그런데 '혹시나?'의 기우는 '역시나!'로 귀결됨이던가. 아들과 키가 안 맞아서 기우뚱거리며 달려가던 나는 만취한 데다가 발 마저 헛딛는 바람에 그만 모래가 가득한 학교운동장에 코를 찧고 말았다.
"와아~!"하는 관중들의 환호성(?)과 왁자지껄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유심히 살펴보니 쌍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만 보는 여자가 있었으니 그는 다름 아닌 마누라였다. 어쨌거나 달려온 아내는 손수건으로 지혈을 했지만 역부족이었기에 서둘러 날 집으로 끌고 갔다.
날 누이고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아내는 "내가 못 살아! 달리기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나 일렀거늘..."이라며 힐난을 줄줄이 사탕으로 달았다. 그러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세월은 쏘아버린 화살처럼 흘러 그 해 가을운동회 때 이 아빠의 비극적인(!) 쌍코피 터지는 현장(?)을 지켜봤던 아들은 청년이 되어 지난달에 입대했다. 아들에게서 학수고대했던 편지가 얼마 전에 도착했다. 연일 고된 훈련을 받느라 심신이 피곤지경일텐데도 자신보다는 우리 부부의 건강과 안부를 먼저 챙겨주는 심지 곧은 아들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아들이 너무도 보고 싶다. 아들아, 잘 지내고 있니? 우리집은 너의 염려 덕분에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단다. 네 엄마는 어찌 지내고 있느냐고? 어제도 술에 떡이 되어 돌아온 날 보고 네 엄마가 그러더구나. "이 웬수야, 차라리 소주하고 나가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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