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이랄 것도 없고, 대표라고 하기엔 더더욱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 명함 속에서 처남의 마음다짐을 알 수 있었다. 난 몸이 안좋으신 장인어른에게 분명 큰 힘이 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런 처남이 다시 나가버렸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던 처남은 이번 추석에도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다독을 즐기고 있었다. 130kg을 육박하는 그가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그의 급한 성격이나, 거구의 몸집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래서 책읽는 모습이 더 좋아보이는 것 같다.
그가 집을 나가고 난 뒤 방에는 그가 읽다만 책이 놓여 있었다. 한가운데쯤 급하게 접어놓은 듯한 그 책은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였다. 처남이 단순히 베스트셀러라서 읽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졌다.
그날 저녁 처남이 없는 빈방에서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었고, 처남과 칭찬하기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처남과 칭찬, 집안의 막내, 편견, 편애, 사랑 등의 단어가 줄줄 떠올랐다.
막내라는 이름으로 늘 얻어 입고, 오해 받고, 양보하며 살아왔을 처남에겐 분명 긍정적 에너지의 사랑이 부족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것은 전혀 해가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공평치가 못해 때론 넘치기도 때론 모자라기도 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상처들을 남겨놓는다.
사랑이 공평치 못한 결점이 있다면 그것은 칭찬의 기술로 보완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에서 나오는 칭찬하기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상대의 정신을 순간 마취시킨다는 것이다. 칭찬을 받는 순간 우린 멈칫하며 묘한 감정의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다. 그 마취성분은 그전의 모든 나쁜 기억들을 지워버려 새로운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시켜 놓는다.
이제 가족안에서도 사랑의 말 한마디, 칭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막내라서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양보를 한 것에 대한 칭찬이 당연한 일이다. 형의 옷을 물려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아니라, 물려 입어 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무조건 '오냐오냐, 잘했다'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방종이다. 관심을 가지고 애정으로 앞으로 늘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때 던지는 말이 칭찬이다. 늘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분명 회초리나, 무서운 말한마디보다 더 강한 힘을 낼 것이다.
이제 '무엇을 잘못했나'가 아닌 '무엇을 칭찬해줄까'로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칭찬 바이러스를 지혜롭게 뿌리고 다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처남이 다시 무사귀가 하길 바래본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