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구 치평동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수용 소식을 전한 후 환호하며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박찬 기자 | ||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군용품 생산에 노역을 시킨 ‘미쓰비씨중공업’이 14일 근로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협상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http://cafe.daum.net/1945-815)'은 15일 오전 서구 치평동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쓰비씨중공업 측이 지난 14일, 근로정신대에 대한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뜻을 ‘나고야미쓰비씨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을 통해 그 뜻을 정신으로 알려왔다고 밝혔다.
미쓰비씨 측은 14일 오후 본사 총무부장 명의의 공문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고야 미쓰비씨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지원회’을 통해 정식으로 알려왔다.
이날 시민모임 회견에서 “만시지탄(晩時之歎·때가 늦었음을 한탄)‘이지만 미쓰비씨 측의 결단을 적극 수용한다”며 “ 이같은 미쓰비씨 의 결정은 역사의 순리이자 일제강점기 당시 10여만명을 강제징용한 전범기업 ’미쓰비씨의 도리이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태도 변화에 한껏 고무된 할머니 등은 "잠자는 양심을 깨워냈다며. 승리를 자축하자"는 진행자의 외침에 만세삼창으로 화답하며 감격을 나눴다.
근로정신대에 끌려간 지 66년만, 해방 65년만, 손해배상 소송 11년 만에 이루어낸 만세소리였다.
한편 시민모임측은 이 회사가 "협의가 계속되는 동안 한·일 양국에서 정신대 문제와 관련해 미쓰비시 관련 회사를 대상으로 한 집회와 서명활동, 불매운동을 삼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과는 지난달 23일 일본을 방문한 시민모임과 이용섭 의원등의 제안에 대한 회답이었다.
당시 일본을 방문한 시민모임은 삼배일보로 미쓰비씨의 사죄와 일본정부의 배상을 요구하였으며 13만4천여명의 시민서명을 미쓰비씨 중공업과 일본정부에 전달하고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참여해달고 요청했다.
이날 시민모임 측은 이같은 협상에 응하는 미쓰비씨의 입장에 대해 “200여일에 걸친 광주시민의 1인시위, 일본정부의 연금탈퇴수당 ‘99’에 반발하여 서명한 국민들의 분노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며 “인권과 정의를 회복하려는 한일 양국 시민의 연대투쟁과 범국민적 저항이 65년간 잠자던 전범기업의 양심을 깨웠다고” 평가했다.
또한 최근 일본내에서도 내각 2인자이자 공식대변인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도 일제시대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음을 인정하면서 정부차원의 보상의 입장도 밝힌 바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은 1944년 5월 전남 출신 150여명, 충남 출신 150여명 등 300여명의 소녀를 일본내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징용하였으며. 징용된 근로정신대들은 같은해 12월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으로 목포, 나주, 광주출신 동료 6명이 숨지는 아픔을 겪은 뒤 해방을 맞아 1945년 10월 맨몸으로 귀국해야만 했었다.
주요 근로정신대 징용문제에 대한 관련 상황일지
▲1944.5.30 = 목포, 나주, 광주, 순천, 여수 등 전남, 충남 출신 소녀 300여명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감
▲1944.12.7 =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으로 목포, 나주, 광주 출신 6명 사망
▲1945.8.15 = 해방(귀국은 1945년 10월 중순)
▲1988.12.7 = 일부 나고야 시민, 미쓰비시 공장에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건립
▲1999.3.1 = 양금덕 할머니 외 7명 일본정부, 미쓰비시중공업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시작
▲2005.3.24 = 나고야 지방재판소 '기각' 판결
▲2007.5.30 = 나고야 고등재판소 '기각' 판결
▲2008.11.11 = 도쿄 최고재판소 '기각' 판결
▲2009.3.12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결성
▲2009.6.25 =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2만8천174명 서명부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전달
▲2009.7.25 = 원고 김혜옥 할머니 사망
▲2009.9.7 =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 원고 8명에 대한 후생연금 가입사실 확인
▲2009.10.5 = 미쓰비시 자동차 광주전시장 개장에 반발 '1인 시위' 돌입
▲2009.12월 중순 =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보험청,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지급
▲2010.1.24 = 시민모임, 양금덕 할머니 등 '99엔 파문'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 후생노동성 항의방문
▲2010.6.23 = 시민모임, 13만4천162명 서명부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 정부에 전달, 미쓰비시중공업 측 면담에서 7월15일까지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위한 협의체 구성 촉구
▲2010.7.14 =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통해 협의체 구성안 수용의사 전달
한편 기자회견장에서 피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 등은 “우리가 요구하는 첫째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사죄 이며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죄라며” 밝히며 한 유족은 회견에서 "돈은 광주 시민모임과 나고야 시민모임에 기증할 의사도 있다"며 "보상금 얼마로 해결할 아픔이 아닌 만큼 반드시 사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모임은 이같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우선 조건으로 사죄를 내세울 예정이다.
시민모임은 이달 중 방한 예정인 나고야 소송지원회와 피해 당사자, 유족 간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상 방법, 요구안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시민모임은 80대 나이에 접어든 할머니들을 위해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 최대한 빨리 협상 테이블을 꾸려 내달 8월125일 이전에 진전된 협의안을 끌어낼 방침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요청에 따라 1인 시위 등 반(反) 미쓰비시 활동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시민모임 대표 김희용 목사는 "미쓰비시 측의 결정이 잠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미쓰비시의 진정성을 믿고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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