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할머니이지만, 생신날이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나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싸가지고 오시던 작은집 외숙모는 완벽해 보이는 맏며느리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30년 넘게 해오시던 외숙모가 언제부터인가 왕래가 뜸해지셨습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일을 등한시했던 저는 그냥 바쁘신 줄로만 알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며, 외숙모와 긴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집에 시집와서 종노릇하러 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
"난 진짜 억울하다.”
과일을 깎으시며, 먹으라고 건네주십니다.
처음으로 먹어본다는 멜론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난 항상 맛있는 과일은 남편과 아이들 먼저 주고 찌꺼기만 먹었지. 그나마 안 남으면 맛보지도 못했어.” "그런데 이제 늙으니 먹고 싶은 과일도 없다. 젊었을 땐 먹고 싶은 것도 많더니만........”
"넌 그렇게 살지 마. 맛있는 과일 있으면 제일 먼저 먹고 나머지를 줘, 그래도 아무도 모른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외숙모는 시집와서 집안일을 도맡아하며, 착한 성품과 지혜로 집안을 잘 꾸려 나가셨습니다. 이젠 남부럽지 않게 잘살고 있는 외숙모는 그동안 혼자 많이도 지치고 힘이 드셨나 봅니다.
“이젠 좀 벗어나 혼자 편하게 있고 싶다. 사람들은 시어머니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냐며 말들 하지만, 내 앞에 닥친 일은 자신밖에 모른다.”
몇 년째 작은집 할머니는 눈이 멀어 집안에만 계시며, 지금은 건강이 더 악화되어 외숙모가 돌봐드리는데 힘이 드신 모양입니다.
"너는 그렇게 살지 마라. 우리 세대는 앞으로 며느리를 얻어도 밥한 끼 얻어먹기 힘들다.”
"남자는 돈은 같이 벌어도, 아이 낳고 집안일하는 것은 여자가 다 해주길 바라지. 그런 남자는 절대 만나지마라.” "너희 할머니도 나한테 많이 서운해 하시지?”
사실 저희 할머니가 외숙모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서운함도 더해가는 것이겠지요. 몇 십년간 온갖 집안일을 도와주던 외숙모가 발길을 끊었으니깐요. 하지만, 외숙모도 이젠 많이 늙으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 얼마나 많이 지치고 실망했을지.
이 땅에 40,50대 여성들은 시집와서 아이를 낳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식에게 같은 대접을 받기는 힘든 처지입니다. 그나마 건강할 때 하고 싶었던 것 먹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싶지만, 이미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편히 살고 싶은데 그런 작은 변화가 주변에선 갑작스런 반란으로 여겨집니다.
"그동안 외숙모가 너무 잘해주셔서 작은 것에도 서운함을 느끼시는 거여요.”
나는 진짜 억울하다고 다시 말씀하시는 외숙모님께 말하고 싶었습니다. 외숙모의 삶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우리모두가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외숙모를 초대해 따뜻한 밥한끼 차려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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