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팔뚝에 새겨진 3등 도장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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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팔뚝에 새겨진 3등 도장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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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의 <세상사는 이야기> 나도 깃발 아래 서고 싶었습니다.

 
   
  ⓒ 박철  
 

지난주 목요일(4일), 우리 집 병아리 은빈이가 다니는 지석초등학교에서 가을운동회가 있었습니다. 지석초등학교는 전교생이 40명인 작은 시골학교입니다. 달리기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각 학년별로 두 명 아니면 세 명이 달리기를 하는데, 아무리 못 뛰어도 이등 아니면 삼등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참으로 좋은 학교이지요. 우리 집 은빈이가 달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강렬한 태양 빛이 정면에서 비치기에 나는 옆 방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딱총소리와 함께 1학년 세 아이가 동시에 튀어나왔습니다. 중간 지점까지는 은빈이가 2등이었는데, 거의 결승점에 와서 뒤따라오던 예진이에게 추월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은빈이는 3등이었습니다. 선생님이 1, 2, 3등을 한 아이들 팔뚝에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 순간, 불현듯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달리기에는 소질이 없었습니다. 체육을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유독 달리기와 줄넘기는 내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6년 동안 가을 운동회를 치루면서 제발 나의 어머니가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그게 나의 바램이었습니다.

 

 
   
  ^^^ⓒ 박철^^^  
 

우리 집 4 남매 중, 누나와 밑에 동생들은 달리기에서 꼭 1등을 하는데, 나만 매번 꼴찌였습니다. 나는 꼴찌라는 상처를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봄 소풍에는 따라오지 않으셨지만 가을 운동회에는 꼭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가을 운동회에 오시는 이유는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나가 달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의 누나는 릴레이 대표 선수였습니다. 달리기에는 늘 1등이었고, 가을 운동회의 꽃인 1200미터 릴레이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남자보다도 달리기를 더 잘했습니다. 아무리 상대편 선수가 앞선 상태에서 바톤을 이어 받아도 악착같이 뛰어 역전을 하고 맙니다. 운동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소리와 박수소리가 지축을 울립니다. 청백전 마지막 승부가 1200미터 릴레이로 결정될 때가 많기 때문에 나의 누나는 모든 아이들의 우상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서 계신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누나가 자랑스러운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 채 한참동안 서 계셨습니다.

누나는 가을 운동회만 되면 공책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나는 달랑 공책을 한두 권을 받아 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나도 1, 2, 3등 깃발 뒤에 서고 싶었고, 내 팔뚝에도 1, 2, 3등 도장을 받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했습니다.

 

 
   
  ^^^ⓒ 박철^^^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로 기회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운동회였습니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아홉 명의 아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탕’ 하는 딱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아홉 명 아이들이 앞을 향하여 총알처럼 튀어나갔습니다. 앞을 향하여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질주하는데 내 앞에 여덟 명의 아이가 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아, 오늘도 꼴찌구나! 집에 가서 엄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에 네 다섯 명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결승점을 통과했는데 나는 당당히 3등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내 팔뚝에 3등 도장을 꽉 찍더니 나를 노란색 깃발 뒤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가을 운동회를 다섯 번 하는 동안 달리기에서 최고의 성적이었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아이들이 툴툴거리면서 하는 말을 들었는데 네 다섯 명이 넘어지는 바람에 꼴찌로 달리던 내가 3등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던 나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3등을 했지만 나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도시락만 챙겨 주시고 가을 운동회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박철^^^  
 

나는 내 팔뚝에 찍힌 3등 도장자국을 수십 번을 넘게 보았고, 땀에 그 도장자국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가을 운동회가 끝나고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내 팔뚝을 내 자랑스럽게 내보이면서

“엄마, 나 오늘 달리기에서 3등 했어요!”
“.....?”
“엄마, 진짜예요! 자 보세요. 내 팔뚝에 3등 도장 찍힌 거!”
어머니는 내 팔뚝을 보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래, 잘했다!”

우리 집 병아리 3등 도장을 받고 노란 깃발에 서 있었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3등이 쑥스러운지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은빈아! 3등이면 잘 한거야!”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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