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셈'과 '경계'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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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셈'과 '경계'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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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국제화에 재고해야 할 '돈'관념

^^^▲ 100위안권 중국 인민폐위상이 높아진 위안화의 국제화와 함께 중국인들의 경제관념의 위상도 높아져야 한다.^^^
중국인들은 셈(算)이 정확한 사람들이다. 왕서방이나 윈저우(溫州) 상인이 모두 동양의 상술을 대표하는 중국 상인들이다. 중국의 유태인들이라 불리는 윈저우 상인들은 지금도 중국 경제를 주름잡는 세계적 거상으로 손꼽힌다.

주제넘지만 가혹하게 표현하자면 이러한 생각은 부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런 고정관념만 믿고 중국에서 무역이나 사업을 하다가는 손해를 감수하거나 망할 일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셈'이란 것도 욕망이 지나치다 보면 아무 소용이 없는 숫자놀이에 불과하다. 어디 세상살이의 셈이 답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지금 중국에서는 그런 셈이 바르고 거래를 공정하게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고, 왕서방은 다만 책에서나 존재할 따름이다.

광속으로 발전해 가는 지금 중국의 경제가 그들의 셈 관념을 흐려놓은 걸까? 아니면 돈을 돈으로 보지 않고 무한대의 욕망의 수단으로 삼아 '왕서방 뺨치는 왕서방'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 걸까?

어쨌든 현대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돈 앞에서의 '경계관념'은 아주 희박해 졌다. 돈이 보이면 셈이나 체면이나 정의 같은 것은 도무지 별무소용(別無所用)이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에 무관심한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일단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게 보이면 그 절반은 나의 돈이라는 생각이 지금 이들의 '셈법'이 되었다.

자, 이런 경우를 들어 보자. 중국에서 먼 거리의 택시를 탔다고 할 때 요금이 48위안(약 8천원)이 나와 50위안짜리 돈을 주었다면 거스름돈을 받는 데 약 20초 이상 걸릴 것이다. 칠팔 년 쯤 전, 한 번은 250위안을 주기로 약속하고 택시를 타고 먼 도시로 가다가 도착지로 예정된 호텔까지 가지도 않고 50위안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아는 중국 사람들은 "당신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그런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물론 나는 호텔 직원에게 돈을 맡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기사는 결국 호텔 직원에게까지도 떼를 쓰다가 안전요원이 나오자 아무 말도 없이 직원이 건네 준 250위안을 받고 돌아갔다.

'지금 그 기사의 기억 속에 나머지 그 '50위안'의 돈은 누구의 돈으로 남아 있을까?' 나는 아직도 그것이 궁금해진다. 사실 그 거리에서 50위안의 돈은 큰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 며칠 전부터 당시 중국말이 안 통하는 우리 일행들이 겪은 바가지요금 때문에 3명의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입은 양복에 걸맞지도 않은 그 싸움에서 한 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너무 묵은 얘기인가? 이번엔 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다. 사흘 전에는 우리 집이 중국에서 이사를 했다. 그 날은 너무 피곤하고 주변에 일도 있고 하여 집이고 짐이고 다 안사람 통역인인 교포 여성분에게 맡기고 아파트 뜰에서 볕을 쬐고 있었다.

'만만디'를 하던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아침 9시 반에 시작한 일을 오후 3시에야 마쳤다. 두 사람은 놀고, 두 사람은 비교적 열심히 짐을 날랐다. 아무렴 외국인이 중국인들에 비하자면 무슨 가구나 짐이 그리 많았겠는가?

마침내 결산 시간이 되자 추가요금(일종의 시간 할증 요금) 얘기가 나왔던 모양이었다. 창문 밖에서 그 교포 여성이 일꾼들과 실랑이를 하길래 모른 체 했더니 나중에야 그 진실은 밝혀졌다.

그 통역 여성은 대단히 영리하고 기지가 밝은 편이었다. 아무리 얘길 해도 안 듣길래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더니 금세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돌아가더란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라 그런 거 절대 용납 못 한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듣고도 어리둥절해 한참이나 생각을 했다. '조선 사람'이라면 조선민족인가, 북조선인가? 나도 조선 사람은 맞지만.

어쨌든 돈 앞에 치열한 중국인들도 '더 치열한 조선 사람'은 겁을 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중국에 와서야 북한 득(得)을 한 번 보았다. "옳아, 저렇게 경계가 확실한 사람들한테는 꼼짝 못 하는 구나!"

셈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개인적인 경험의 바가지(폭리) 이야기로 흘러 버렸다. 셈의 공정성을 해치는 요소는 그 뿐 아니라 일(사업이나 서비스)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 부족, 일의 과정 상 잘못에 대한 책임소재 기준의 판단력 등에서도 자주 기인한다.

돈이란, 사람의 주머니에 있기 보다는 늘 은행의 전산망 안에 숫자로 존재하거나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느 적당한 공간에 있기에 마련이 아닌가? 거래 가능한 그 돈들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는 그 누구의 돈도 아니다.

우스운 일과 웃지 못할 일들이 많은 게 중국살이에서 느끼는 돈 문제지만 나는 최근 읽은 한 칼럼니스트(조선족 교포 출신)의 칼럼을 통해 그 이유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절대자인 조물주나 귀신에 대해 전면적으로 신봉하지는 않는다"라며 유물론적 사고관념이 중국인들의 몇 가지 아이덴티티를 규정한다는 그의 글이 중국인들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인들에게 물질은 정신에 비해 훨씬 중요하고 현실에 더 가까운 존재다. 무신론자인 나도 나를 초월한 그 무엇인가가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으나, 이들에게는 "없는 거나 진배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지금의 세태에서 그럴 수 있다는 수긍이 간다.

그런 선에서 인정한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의 문제가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어떤 의미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이들과 우리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당분간은 아니라도 일부의 중국인들이 스스로 서둘러 변할 거라고 믿는 쪽이다. 그 근거는 아주 간단한 논리에 있다. 이미 그들 중 일부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재화를 축적했고 그 재화를 불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본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안의 부자들보다 더 능동적으로 자본관념에 빠르고 정확하게 적응한 중국인들은 바로 한국에서 상업(장사)를 경험한 교포들이 아닐까.

지금 중국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뉴스를 읽다가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다. 실은 중국사회 내면에서는 뉴스보다 더 빨리 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 거대한 열차가 지향하는 종착점이 바로 '보다 완전한 경제사회'이며, 아무리 빠른 고속열차라 하더라도 반드시 '돈의 진보'라는 예정된 레일을 밟아 가야 한다.

중국의 '다궁(大公)'이라는 기업 신용평가 회사는 이번 미국 금융당국의 심사에서 떨어지기는 했으나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한다. 미국 안에서 굴지의 평가법인들과 겨루려면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당연히 자국에서 역시 같은 논리에 따라 기업 신용도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 평가의 기준이란, 대체로 '도덕성'과 '합리'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리고 최근 중국 금융정책의 브레인으로 등용된 칭화대학교 리다오쿠이(李稻葵) 교수 또한 미국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을 공부한 석학이다. 지나쳐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가 맡은 막중한 역할을 보면 파격 인사이자, 중국경제의 대단한 체제변혁의 모험이 아닌가.

결국 돈에 대한 관념은 한 나라의 경제 관련 법(주로 상법)에 근거하여 형성된다. 본격 자본개방 20년에 걸쳐 점점 복잡해지는 경제사회에 걸맞는 더 정교한 법률이 중국에도 필요하다. 새로운 상법에 의하여 사업가들은 훨씬 많은 학습과 고민을 하게 될 테고, 일반 공민들 역시 수많은 돈 관련 범죄와 분쟁의 시행착오 끝에 강력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새롭게 돈을 이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친절한 서비스를 마친 호텔의 복무원 아주머니는 규정 때문에 한사코 팁(Tip)을 거부한다' 그런 반면 '자신있게 출발해 놓고 길을 몰라 같은 골목을 여러 번 헤매며 고생한 택시 기사는 오히려 추가 수고비를 요구한다' 이런 모순 역시 곧 해소되리라 본다. "이건 돈이 아니니 받아도 괜찮다"라며 한국돈 몇 천원을 팁으로 건넨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호텔 규정을 바꾸고, 신고를 당하는 택시 기사를 강하게 처벌하면 된다.

여전히 중국인들은 '법'과 '규칙'에 대해 충실하다는 점에서 개선의 희망이 크다. 베이징올림픽이나 상하이엑스포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사실이다. 문제는 정책이다.

이제 페그제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위안화가 세계로 향하고 있는 이 마당에 중국이 진정한 경제의 강자로 올라서려면 개혁해야 할 것은 환율제도만이 아니다. 돈에 담긴 철학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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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 2010-12-18 15:28:24
훌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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