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위수(玉樹)에 찾아든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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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위수(玉樹)에 찾아든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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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 文成公主의 흔적을 지운 대참사

^^^▲ 위수현과 그 사람들참사의 현장은 당나라와 토번국의 화해와 세기의 사랑이 깃든 역사의 땅이다.^^^
티베트(西藏) 라싸의 화려한 포탈라궁은 당대 최강의 토번국 송첸캄포왕이 당나라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위해 지은 궁궐로도 유명하다. 당태종 이세민의 양녀인 문성공주는 라싸(拉薩)로 가기 위해 641년 시안(西安)을 떠나 시닝(西寧)과 마둬(瑪多)를 지나 고대로부터 장족(藏族)마을인 위수(玉樹)에 도착한다.

칭하이(靑海)성 남단에 있어 현재의 티베트자치구와의 경계에 위치한 위수현(玉樹藏族自治州)은 당시로서는 토번국 영역 깊은 자리에 있었다. 위수현에 다다른 문성공주는 자신의 반려자가 될 당대 최고의 영웅 송첸캄포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라싸로 향하지 않고 어떤 이유로 거기에서 1년이라는 긴 세월을 머물렀을까?

비록 송쳄캄포가 그녀와의 결혼전쟁에서 패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힘에 밀려 토번에 팔려 가는 자신의 초라함 때문에 송첸캄포가 위수현까지 마중 나와 주기를 바란 걸까? 아니면 이미 사랑의 마음이 싹트게 한 그 사내가 4명의 왕비 외에 다시 네팔의 왕녀를 맞아들이고 다시 자신을 기다리는 데 대한 질투심의 표현이었을까? 그 아름다운 풍광에 반하여 자신의 반려자와 함께 즐길 신혼여행지로 위수현을 택한 걸까?

역사는 문성공주의 심정에 대해 무엇이라 단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 어떤 이유라도, 그 모든 이유가 그들의 심정과 위수현이라는 지정학적 의미, 위수현이 지닌 수려한 풍광 안에 모두 설명되고 있다.

3천Km의 혼인 길에 오른 문성공주는 왜 그리도 많은 혼수품들을 준비한 것일까? 왜 그 속엔 특별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던 걸까. 가구와 그릇, 패물, 비단은 그렇다 치고 역사와 문학, 기술서적과 의약품,곡물, 누에알, 그리고 25명의 시녀와 악대, 많은 장인들의 대열에 불상이 들었다는 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공주는 낯선 토번국의 문화와 자신의 당나라 문화를 습합하기 위해 이 위수현에다 새로운 곡물과 습관을 심어주고, 그리고 불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토번에서의 고향으로서 화려한 라싸의 포탈라보다 먼저 주저없이 위수현을 생각했을 것이다.

문성공주는 그 모든 것들을 우선 이 위수현에 남기고 심고, 또 전수했던 것이다. 이미 당시부터 위수현은 고원 귀퉁이에 자리한 하나의 고을이 아니었다. 티베트와 중국이 고대로부터 공유한 영혼의 땅으로 남겨진 위수현은 문성공주묘(廟)와 함께 문성공주로부터 전해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로 기억된 공간이었다.

당대 최고의 정치적 이슈를 만들었던 사랑의 주인공인 문성공주와 송첸캄포. 그들이 밀월을 보낸 위수현은 우리에게 매우 로맨틱한 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공간 속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엄청난 지각변동으로 참혹한 고통을 받고 있다. 오늘 아침까지 590명의 사망자와 1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낸 지진참사의 진앙지로서 더 유명한 공간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실은 오래 전부터 티베트의 영혼이 깃들었다는 나무쵸호수가 매우 보고 싶었다. 시닝에서부터 위수현을 지나 나무쵸호수를 구경하고 라싸까지 여행해 보기를 학수 고대해 온 나에게 위수현의 지진은 또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무명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접한 이 소식에 정신없이 기사를 송고하면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진참사 소식과 중국 CCTV 화면을 통해 접한 위수현의 모습 그 어디에서도 문성공주와 그 여인이 전한 수많은 문화의 원형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왜 하필이면 위수현이었을까. 이렇게 물으면 누군가 '칭짱고원의 지괴 경계판'이라는 이유를 댈 것이다. 그래도 그 위수현의 지하 33Km 지점에서 일어난 발단이 나에게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그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는 수많던 문성공주의 흔적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참혹하게 매몰된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 흔적들까지 영원히 지워지지나 않을까. 한바탕의 대지진이 가진 영적인 의미에 관하여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칠 수도 없는 일이다.

창장(長江), 황허(黃河), 란창장(瀾滄江)의 발원지로서 장쩌민(江澤民) 총서기가 쓴 "三江源自然保護區"기념비가 있는 그곳은 말 그대로 아시아 대륙의 물이 시작되는 하늘의 땅이다. 그래서 우리가 '신들의 땅'이라 불러 온 거기엔 '하늘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퉁톈허(通天河)가 있고 '황금 모래가 있을 법한' 진샤장(金沙江)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수 천 년 전의 그들은 물의 원천을 찾아 거기에 모여든 것은 아니었을까? 물이 시작되는 가장 높은 해발 4,493미터인 거기에 그토록 오래 살아 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만이 아니다.

칭짱(靑藏), 그 넓은 고원에서 초목과 가축들을 벗 삼아 하늘에 기대어 숭고한 삶을 이루어 가던 그들. 정치도 삶의 고달픔도 한낱 순간의 꿈이라 여기고 영혼에 기대어 살아가던 그들에게 이 아픔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잦은 지진의 공포 속에서 그들은 만일에 자신에게 들이닥칠 불행에 대해 미리 일러 둔 것일까?

가난도 정치적 핍박도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지고지순(至高至順)의 그들은 과연 자연이 준 운명의 참혹함에 대해 한 순간 너무나 참담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 아닌가. 이제 그들은 자신을 버린 자연에 대해 원망할 생각도 없이 어디에 기대어 살아갈 것인지.

어쩌면 이제부터 위수현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참사의 현장으로 더 깊이 각인될 지도 모른다. 중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그들의 아픔을 나누어 하루라도 빨리 그들이 이 상처를 딛고 다시 칭짱의 푸른 초원에서 가축들과 함께 전과 다름없이 정치와 현실, 그리고 생사의 간격을 초월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한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 끼 식사와 이부자리이며, 결코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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