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1]명절 때 만사 제쳐놓고 고향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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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1]명절 때 만사 제쳐놓고 고향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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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안 내려오면 명절 쇨 맘이 싹 달아난다

 
   
  ^^^▲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
ⓒ 김규환^^^
 
 

한가위와 설은 최대 명절이다. 누군 한가위 추석이 더 크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래도 설이 더 큰 명절이라고 한다. 추석 때는 한가위가 최대라 하고 설이 다가오면 설이 크다고 한다. 꼭 며칠 앞두고 언론에서 이런 말장난을 하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3천 8백만 대이동이니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도시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은 허전하다. 사람들로 북적대다가 어느 날 텅 빈 거리에 내동댕이쳐진 자신을 발견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타향살이를 실감하려면 명절에 도시에 남아 있어봐야 한다. 그래야 그 서러움을 안다. 뭐 먹을 것도 마땅치 않다. 혼자 내버려진 듯한 기분마저 든다.

도시에 남아서 즐기던 요즘과는 달리 도시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서러운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부모 입으실 옷가지에다 선물, 술을 받고 동생들 좋아하는 것을 동대문, 남대문 시장을 헤매고 돌아 포근한 고향 품에 안기는데 외로이 머나먼 타향에서 쓸쓸히 보내는 그 신세 참 서럽고 처량하다.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영화나 한편 보려고 밖으로 나가보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이름과 얼굴이 저녁하늘 보름달에 하나하나 떠오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몇 천 원만 있었으면 내려갔을 것을...’ ‘만원만 빌릴 데가 있으면 갔다왔을 건데...’ 자신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짝이 없는 경우는 더하다. 남아 혼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편지 한 장 미리 보내놓고 못 내려가는 심정 누가 이해할까? 명절이 지나서도 그 후유증은 감당하기 힘들다.

고향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뭐 먹었네’, ‘뭐뭐하고 놀았네’, ‘고향에 가니 좋더라.’는 말에 화가 치밀기도 한다. ‘집에까지 20시간 걸렸다.’는 말도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향수병! 고향을 그리는 그 마음이 누군들 없을까?

향수병은 백화점 화장품 가게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다. 향수병은 명절이 지나 1달 이내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 형제자매를 만나고 오면 자연 치유가 된다. 상사병의 일종인 이 병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다.

 

 
   
  ^^^▲ 고향 마을이 어렴풋이 보입니까?
ⓒ 김규환^^^
 
 

70년 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79년과 광주항쟁을 총칼로 짓밟고 권력을 잡았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해는 무척 힘들었다. 공장에 다니든, 공부를 하든 차비가 없어서 고향에 가지 못한 젊은이들이 비일비재했다.

일년 열두 달 야근에 철야를 마다 않고 저임금에 ‘닭장집’에 살았던 노동자들 대다수가 명절 두 번도 찾아 먹기 힘든 궁핍한 생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 피땀을 먹고 대한민국의 사장님, 회장님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그 해가 6학년 때이던가? 25살 큰형, 22살 둘째형, 19살 먹은 누나가 한꺼번에 내려오지 못한 일이 있었다. 15살을 넘기고 고향을 떠나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비단 우리 집에만 해당되지도 않았다. 집마다 그랬다.

 

 
   
  ^^^▲ 고추 널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 김규환^^^
 
 

70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 큰 형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아무데서도 써주지를 않았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결국 찾은 곳이 청계천 신발 공장이었다. 다음해에 아버지께서 다시 올라가 2년 동안 기술이나 배우라며 무임금으로 공장에 넣고 내려가신다.

둘째형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집에 붙어 있다가 서울로 보내졌다. 누나도 17살 때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어린 형들과 누나는 얼마나 가난에 한이 맺혔던지 입을 것, 먹을 것 사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시골로 소액환으로 바꿔 부치면 소 한 마리 사고, 논 몇 마지기 사게 했다.

6남매 중 누나까지 세 명은 몇 년간을 직장생활을 하다가 프레스(press)를 다루는 금속가공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큰 형은 서울 생활을 성북구 하월곡동 밤나무골에서 시작했다. 한가지 일을 25살에 벌써 10년을 한 인내의 한국인이었다. 한 우물만 판 까닭에 그 젊은 나이에 가내공업 사장이 된 것이다.

실력을 갖춰 금형 ‘가다’도 직접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 어디 쉬운가. 첫해와 둘째 해는 시골에서 보내온 쌀만 있을 뿐 생활도 안되게 힘겨웠다. 마침 둘째형은 방위 생활을 하고 있었다. 누나는 오빠들 밥 해주며 공장 일도 같이 했다.

그 해 추석엔 형제들이 오지 않았다. 돈이 씨가 말라버린 것이다. 공장을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위태위태한 순간에 직면했다.

 

 
   
  ^^^▲ 고향마을엔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떨어진 감 우려먹을 때가 왔군요.
ⓒ 김규환^^^
 
 

처음으로 가족 전체가 모이지 않으니 부모님과 아래 동생들은 명절답지 않은 명절을 보냈다. 편지로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숨을 푹푹 쉬던 어머니. ‘공장이 잘 안되어서 그런가 보다’며 걱정이 태산인지라 술을 더 드셨던 아버지. 두분 다 맥이 빠져 건성건성 조상님들께 차례상만 올렸다.

나를 포함한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셋째형은 아예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기만 할 뿐 형들이 못 오는 걸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죽은 듯 아무 소리도 않고 맛없는 밥만 먹고 며칠을 보냈다. 차림도 형편없었다. 다를 때 같으면 지지고 볶고 삶고 굽고 온 집안이 맛난 음식 내음으로 가득할 때지만 그 해에는 싸늘한 분위기가 돌았다.

추석 전날 어머니는 동네 어귀에 나가 행여나 올까,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로 왼손을 눈 위에 붙이고 뒤꿈치를 들어 멀리 바라봤다. 그렇게 몇 번을 서성였는지 모른다.

귀향버스가 들어올 밤 11시가 되어도 어머니는 분명 오지 않을 걸 알고 체념을 했으면서도 밖에 나가신다.

“뭣 하러 끼대(쓸데없이) 나가!”
“글도 한 번 나가봐야제라우.”
“안 온다고 했당께.”
“시균이 한테 애들 안부라도 물어볼라고라.”
“낼 찾아오면 물어보면 될 것을 쯔쯧.”
“핑(금방) 댕겨오께라우~”

 

 
   
  ^^^▲ 고향가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갔다오면 힘이 납니다.
ⓒ 김규환^^^
 
 

양복에 한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건장하고 아리따운 젊은이들이 사과 짝에 무거운 짐을 내린다. 마중 나온 사람들로 회관 앞 공터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어머니는 시균이 형에게 가서 안부를 잠깐 묻고 집으로 돌아 오셨다.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지 않자 자정까지도 차례상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릇 자식된 도리가 명절 때 찾아뵙는 것이다. 효도가 별 건가. 어려울수록 더 찾아 봬야 할지니 올 추석에도 작은 핑계로 다른 계획은 뒤로 미루자. 목 빠지게 기다리는 어른들께 작은 선물 하나면 좋다.

남아 있어 인생역전의 꿈을 만들지 못할 거라면 고향에 가자. 효도하려고 하나 막상 두 분 다 이승에 계시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살아 계신 제 섬긴 일란 다하여라’는 송강 정철(鄭澈)의 시조가 생각나는 즈음이다. 어렵다 한들 그 때만큼 어려울까?

 

 
   
  ^^^▲ 고샅 담벼락도 행여 올까 기다리겠지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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