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보충수업' 열공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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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보충수업' 열공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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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韓배우자', 韓 '中배우자'

 
   
  ▲ FAFA 주관 서울무궁화프로젝트 행사연맹의 이병만 총재가 포럼의 주제와 취지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 일본이 한국을 배우자고 나섰고, 한국은 중국을 더 알아야 한다며 새로 중국공부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중국이 한국을 따라 배우고 한국은 일본을 배워야 산다며 아우성을 치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 아닌가.

이러한 동아시아 3개국의 새로운 벤치마킹 조류가 역전현상을 일으키는 일종의 '학습 U턴'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단지 이웃나라에 대한 시샘이나 두려움의 발로인가, 아니면 생존과 경쟁을 위한 진정한 학습의지인가.

탈(脫)아시아, 혐한론(嫌韓論)이 거세던 일본이 이제 와서 한국을 배우자는 건 단지 벤쿠버의 김연아에 대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뒷북'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IMF 불황과 총체적인 국가위기로부터 일거에 탈출한 한국을 벤치마킹하여 현재 자신들의 위기를 돌파해 보자는 절박함이 읽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사실 일본은 도요타 사태를 통해 많은 것을 자성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을 배운다는 의미는 한국에 대한 새로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던 한국은 왜 여전히 건재한가를 자신들의 가슴에 대고 되묻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들의 거울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참에 일본은 자신들의 '자화상'을 다시 그려 볼 생각도 가진 듯 보인다. 서거 100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장장 2,500Km를 도보로 순례해 며칠 전 한국에 온 저 일본 남성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진정성을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기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일본에 대한 잔상이 너무 농하지 않나 생각 든다. 여전히 우리와 일본 사이의 정서적 현해탄은 깊고도 험난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서 변화하고 있는 일본의 실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지금 새로 그려지고 있는 일본의 자화상에서 낯빛은 조금 어두워지고 저 태평양 너머 세계를 향해 활활 타오르던 시선이 힘을 잃은 채 우회하여 아시아대륙 쪽을 응시하고 있다. 주중국 일본영사관은 이미 20년 전부터 중국 내 소수민족의 의료, 교육, 문화, 환경개선을 위해 1곳 당 60만 위안(약 1억원)씩을 지원, 무려 1,040건에 달하는 메세나 사업을 전개해 왔는데, 최근 그 행보가 더 빨라지고 있다.

한국 배우기를 선언하기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일본의 아시아 끌어안기 밑그림 작업이 치밀하다 못해 경계의식마저 들게 하는 건 순전히 과거의 피해 잠재의식 때문일까.

우리가 오래 학습하여 이제 일본을 충분히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일본은 이미 중국에 대해서는 일정한 인식 레벨에 도달해 있다. 말할 필요 없이 중국은 한일 양국을 집중 연구해 어떤 외교적 사안이든 발빠르고 과단성있게 대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의 연구자들 역시 과거 톈안먼을 보고 중국을 다 봤다 하던 '나들이 학습' 태도를 지양하고 이젠 뭐 하나라도 느끼고 오겠다는 자세다. 졸업장 하나 받으려고 중국을 찾던 한의사들의 이야기는 벌써 저 옛날에 끝나고 함께 연구해 보자는 한의학자들이 줄지어 중국을 찾고 있다.

경제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도저히 이론의 기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중국경제 모델을 목하 새롭게 연구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중국 각 학교에서는 한국 학생 수가 갈수록 많아져 수업 분위기를 저해한다고들 난리다.

다만 중국은 가리지 않고 분주히 학습한 덕분에 철저히 이론 무장한 상태로 글로벌 경제 전쟁터에 출정하여 승승장구하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복잡한 내부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하는 분위기여서 우리 두 나라와 조금은 다를 뿐이다.

이 3국의 이웃나라 탐구의 태도 차이는 현 시점에서 보면 상당한 관점의 차이와 함께 외교적 행보의 속도 격차를 유발하고 있다. 지나치게 자신감에 충만한 중국의 외교정책과 지나치게 신중한 일본의 외교정책은 모두 심오한 학습의 결과다. 지금 우리 외교는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 자주 국가적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동아시아 3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습의 혁신은 과거와 같이 누가 누구를 앞서가기 때문에, 혹은 저들을 따라잡기 위한 학습의 차원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우선 그 어느 쪽이든 가깝고도 먼 나라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다는 자각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사실 일본은 우리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금 다시 우리를 배우겠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지나친 정보 욕심이 한 원인인 점은 분명하나 아마도 그것은 일본의 뒤를 따라가려 안간힘을 쓰는 한많은 역사를 가진 이웃나라로만 한국을 인식해 오던 승자로서의 고정관념이 낳은 일종의 '착시'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물 밀듯이 한국을 배우겠다고 찾아 오던 중국 관료들과 교포 무역상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던가. 그리고 당시 낯선 사회주의 나라 중국을 방문해 어떤 인상을 받았던가.

그럼 지금은? 중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비단 너무 빠른 중국의 성장세에 우리 인식이 따라가지 못해 생긴 시간적 격차라고 볼 수 있는가. 그보다 중요한 요점을 솔직히 말하자면 '자만'과 '고정관념'이 낳은 '착시'가 지금 쉽게 수정되지 못할 성격이라 여겨지므로 아예 '다시 배우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가장 가까운 나라, 그러면서 가장 쉽게만 여겼던 나라. 추월 당하고 나서야 다시 보니 오래 전 인식에서부터 무엇인가 '심하게 꼬여져 온 듯한' 느낌에 책을 다시 뒤적이고 웹서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의 효과. 이 새로운 배움이란 학습을 통해 그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새로운 자신을 정립하는 것이다. 미래 글로벌 경쟁은 과거 속도전이나 국가 간 하드웨어 전쟁, 또는 단순한 정보(앎)의 전쟁이 아니라 문화를 매개로 한 '인식'과 '차원'의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에 비해 더 많은 분야에서 앞서 있지만 우리를 배우고자 하며, 우리는 이미 중국에 많은 부분을 추월당한 현실에서도 그렇지 못하다. 그 인식의 격차속에 바로 우리가 빠진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 보라. 아니, 나를 포함하여 자신 스스로의 마음속에 반문해 보자. 누구든 우리가 중국에 대해 배울 것보다 가르쳐 줄 것이 많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그 착각의 틈에서 빨리 빠져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바짝 따라간다 해도 우리는 1,2위를 다투는 중,일 양국의 뒤에 있는 영원한 3등일 뿐이다.

우리는 작고 강한 나라라는 '다윗 신드롬'과 함께 '한류'와 같은 '잘난 맛'에 오래 도취해 있었고 변화의 속도만이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보다 한 단계 위의 엑셀레이터를 가동한 중국은 어느샌가 우리 앞을 '휘-익' 지나가 버렸던 게 아닌가.

여전히 중국 이야기만 나오면 '짝퉁'이나 '황사'로 중국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한국인들이 있다. 아니 많다. 중국은 짝퉁의 천국이며 황사 발원지가 맞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다.

그 중 아주 다행한 일은 몇몇 중국 주재 영사관과 현지 한인회, 외교부 산하 민간 외교단체들이 능동적으로 중국에 접근하는 자세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움직이겠다는 태도에서 스스로 고민한 결과를 토대로 '이런 건 어떻습니까?' 라고 다가가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작년 한 해에 일어난 발상의 변화이다.

이를테면 동북아우의연맹(FAFA)와 같은 민간외교 사단법인은 '이기는 것보다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좋다'는 슬로건을 걸고 작년 연중 '동북아공동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등의 토론회, 한중 국제포럼을 연속 개최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재작년 7월에도 중국과 미국 학생 50명을 초청, 경북 안동 고택에서 선비문화와 양반예절을 체험하는 '대한민국 바로알기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배움 이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3국의 경쟁은 축구와 같은 게임이 아닌 '돈의 전쟁' 그 자체로 변질되고 말 것이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학습이란 야간 자습에 불과하다. 인식의 틀과 시선의 각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초점이 맞지 않은 렌즈로 찍은 사진을 놓고 빛이 부족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한 국가를 학습한다는 것은 새로운 업-데이팅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면서 차이와 공감대를 느끼고 함께 호흡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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