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바르게 살려는 이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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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바르게 살려는 이들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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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붙여준 별명에 대한 상념

인터넷상에서 나와 교류하는 한 사람이 나를 햄릿이라고 불렀다. 딱딱하게 김광진으로 부르는 것보다는 ‘햄릿’이란 별칭으로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온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든다. 누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던, 나 스스로가 그 규정에 구속받지 않으면 그만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이므로, 나는 그 의미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나를 햄릿으로 부르는 사람

햄릿이란 존재는 복잡한 인물이다.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햄릿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모 중에서 어떤 의미를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가 꽤있기는 하나 존경할만하게 신중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자칫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을 리는 없다.

어떤 이를 어떤 방식으로 부른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광진 씨라고 부를 수도 있고, 김 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 김 집사님, 혹은 김 사장님. 또 ‘이 사람’ ‘이 인간’등 사람을 부르는 방법에는 당양한 수사들이 동원될 수 있다. ‘그’라고 할 수도 있고, ‘그분’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또 ‘그’라는 글자 앞에 다양한 형용사를 붙임으로써, 그에 대한 미묘한 특질을 정의할 수도 있다.

이름이란 단지 누구를 지칭하는 의미와 함께, 누구를 어떻게 ‘규정하는’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나를 햄릿이라고 정의하려고 했다. 특히 김광진이라는 이름을 두고 별칭으로 부르려고 한 것은, 단지 나와의 관계설정이 아니라 그에게 의미 있는 나의 어떤 특질에 대한 규정을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햄릿이 가진 어떤 면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러나 햄릿은 매우 복잡한 인물이다. 때문에 햄릿에 대해 때로는 정반대되는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매우 다양한 규정들이 시도되고 있다. 연극무대에서 해마다 수없이 다른 버전의 햄릿이 공연에 오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또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아직도 뭔가 나올게 있다는 것을 보면 상당히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나를 햄릿이라 부른 의미를 추측하기 위해서는, 원작 속에서 햄릿이란 인물이 정확히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보려고 하는 방법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세상에는 작자의 의도와 상관없는 수없이 많은 햄릿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해하고 있고,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햄릿이 어떤 버전의 햄릿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는 독서의 분량이 상당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 그를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든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인품이라면 세상을 보다 잘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 중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독서가 아닌가. 그가 문장을 가다듬는 방법이나,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글을 써나가는 것을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은 바로 독서를 통한 세상에 대한 이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선물이다.

그렇다면 그는 아마도 햄릿의 원전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햄릿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즘의 햄릿에 대한 주류적 해석을 가지고 그가 생각하는 햄릿을 유추한다던가, 새로이 유행하는 햄릿의 해석방법을 가지고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까닭을 이해하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따라서 그가 알고 있을만한 햄릿의 해석을 추적하는 방법으로 그가 나를 그렇게 부른 사연을 알아내려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열쇄를 찾아야 한다. 그래. 수준 높은 추리소설일수록 비밀의 열쇄는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는 법이다. 사람의 마음과 눈을 가리고 있는 미혹을 걷어내면 바로 그곳에 열쇄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법이다. 단서는 그가 나를 알고 난 뒤의 여러 가지 반응들과 그의 인품에 스며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나의 글들에 대해 위트와 재치로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줄 곳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마침내 금을 넘고 만 것이다.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의 점잖은 인격 속에 감추어오던 마음속에, 나에 대한 그 무엇이 있음을 마침내 드러내고야만 것이다.

햄릿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선 그는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다. 그것이 가장 큰 단서이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마음과 통할 것 같은 어떤 것을 나에게서 느낀 것이다. 그래서 경계와 자제심을 풀고 나를 자신의 마음에 있는 어떤 것으로 규정하여 자신에게 보다 가까이 묶어두려고 한 것이다.

햄릿은 바르게 살려는 이들의 이름

그가 지으려 한 것은 실상은 나의 이름이 아니라 그가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의 한 면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기에 김 형. 김광진씨. 김씨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속에는 과연 어떤 햄릿이 들어 있을까. 젊잖게 한평생을 살아온 그의 숨겨진 내면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서기를 꿈꾸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래서 나는 요 몇 일간 그 의문을 가지고 지내고 있다.

‘고뇌하는 인간’ ‘우유부단한 인간’ ‘불행의 그늘에서 절규하는 사람’ ‘용기 없지만 결국 실천을 하는 사람’ 그런 단편적인 의미들 중 하나는 아닐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물이나 삶을 한 면에서만 바라 볼 정도로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그런 뉘앙스라면 굳이 고전에서 이름 찾기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햄릿을 좀 다르게 생각한다. 햄릿은 바로 복합성 그 자체이다. 그는 고뇌하고, 번민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다. 주저하는 듯 하면서 그는 또한 행동한다. 그는 쉬지 않는다. 좀처럼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흐름들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그렇다. 햄릿은 구도자이자 올바른 실천을 향해 꿈꾸는 인간이고 항상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실한 인물이다. 바로 오늘의 힘든 현실에서 바른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인간의 표현이다.

햄릿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려고 고뇌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범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만 깊이 반추하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홀로 고뇌하며 길을 걸어가는 예외적인 인물에 대한 상징이다. 햄릿으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순례자이다. 그렇다. 햄릿이야 말로 삶을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의 표현물이자, 또 하나의 영웅의 이미지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존재. 고뇌하고 좌절하나 넘어지지 않는 존재. 바로 실존적 의미의 화신이 햄릿이다.

그렇다면 나를 햄릿이라고 부른 이의 마음속에는 바로 그런 것이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동안 혼자서 힘들게 살아왔던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대상으로 나를 주목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가 나를 햄릿이란 특이한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그 이름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최고의 찬사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좋은 친구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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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2003-09-01 13:55:03
햄릿이 아니라 헴릿? 아닌가요?

햄릿 2003-09-01 14:32:20
"햄릿"으로 쓰는 게 맞습니다. ^^

블랭크 2003-09-03 09:43:16
아이들에게 별명을 부르는 일은 흔한일이지만 성인들 사이에는 그렇지 못해온게 개인적으로 아쉽다.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고자 함은 물론 숙지되어야할 기본 전제지만 때론 "다정한" 관계를 나타내는 좋은 뜻의 다댱한 애칭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좀 유연한 사회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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