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깍는 아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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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깍는 아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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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다

요즘 한참 글씨쓰기 연습을 하는 내 아이가 연필을 깎는 모습을 본다. 이젠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고 회전봉을 돌리는 모습이 제법 능숙하다. 내가 저렇게 글씨쓰기를 배울 때로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연필을 깎는 모습만은 내 어린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는 조금만 연필 끝이 무디어지면 연필을 깎는다. 나는 아이들이 연필을 너무 자주 깎는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면 아이가 변명을 한다. “연필 끝이 무디어지면 글을 쓰기가 힘들어요.”라고 또박또박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은 금세 수그러든다. 그래 내 어린시절에도 그랬었다. 그땐 그렇게 자주 연필을 깍지는 않았지만, 뾰쪽하게 깍은 연필 끝으로 종이위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을 써가는 느낌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아이는 성격이 꼼꼼하다. 그래서 글을 정확하게 쓰려고 무척 애를 쓴다. 그렇다고 그렇게 예쁜 글씨도 아니건만 한자 한자에 공을 들여서 쓴다. 그래서 아이가 글씨를 쓰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때문에 같은 양의 숙제를 줘도 그것을 해 내는데 무척 힘들어한다. 자꾸만 글씨를 쓰는 손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손에 힘이 덜 들게 하려고, 더 자주 연필을 깎는지 모른다.

언젠가 아이가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연필이 아니라 볼펜으로 글을 쓰는 거야?”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볼펜으로 쓰면 부드러워서 더 힘이 안 들어요.” 아이는 그렇게 대답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도 안돼. 연필로 써.” 나는 무뚝뚝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선 생각을 한다. ‘왜 아이들은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크면 볼펜으로 쓰게 될 텐데...’

아이가 글을 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느 날 그 의문이 풀렸다. 아이는 글을 쓰다가 조금만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그 때마다 글을 지우고 다시 쓴다. 수없이 지우고 또 다시 쓰고 하는 모습이 참 정직하기도 하고, 융퉁성이 없어 보여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마치 어린시절의 내 모습 같기 때문이다. 나도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고 그랬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 공책에 지운 자국이 흠집처럼 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볼펜으로 글을 쓰면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학교에선 연필로 글씨연습을 하라고 하는 것이구나.’ 깨닫고 보니 너무 간단한 원리이다. 그런데도 나는 글씨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왜 그럴까?’ 하며 꽤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보면 무뚝뚝하기만 해 보이는 나도 아빠이긴 한 모양이다.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쓰기연습을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다.

나는 아이에게 내 어린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가르쳐주고 싶다.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서, 그런 과거의 경험들은 거의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린시절 소중하게 간직했던 추억을 아이에게 공유하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자꾸 난다. 그래서 몽땅 연필의 뒤끝을 정리해서 볼펜에 끼워서 아이에게 써보도록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만든 연필을 아이에게 쥐어주며, “아빠는 어릴 적에 이렇게 해서 공부를 했단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의 게으름 탓이 그게 차일피일 자꾸만 미뤄져 간다.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도 자꾸만 미뤄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욕심들은 곧잘 실천에 옮기곤 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면, 나는 아이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한다. “부엌을 뭐라고 하는지 아니?” 라고 물으면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정지요” “그래 맞다.” 나는 아이들의 정답에 기분이 좋아서 그만 입이 벌어진다. “그럼 할머니는?” “할매요.” “맞다 바로 그거야. 우리 아들들 정말 똑똑하네...”

나는 그런 것이 아이들에게 아빠의 추억의 세계를 공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살아간 삶과 아빠가 인생을 살아간 방황의 여정을, 결코 아이들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공유함으로써, 조금씩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내 아버님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서제에 꼽힌 책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정신세계를 조금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었다. 언젠가 아버님은 자신의 오래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은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사투리를 알게 되면 다양한 언어적 구사력을 가지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정신세계 또한 보다 풍부해 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인간은 언어의 감옥 속에서 산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어감이 다른 다양한 어휘들을 구사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감성이 보다 풍부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어휘들이 결국은 내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빠가 어린시절을 살아온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하는 다양한 체험들이, 아이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에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과 모든 슬픔을 너희들의 가슴에 담고, 그 위에 세상에 대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서 너희들 나름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거라.’ 나는 그게 아이들에게 주는 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아빠는 맨 날 책만 보시지 않니, 그리고 낮에는 열심히 일하시고, 그래서 너희들도 아빠처럼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읽던 책을 놓고 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다시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래 너희들도 책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모습들을 많이 알고, 무엇이 옳은 삶인지 열심히 살아 보거라.”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언젠가 한번 마음을 먹고는 반드시 몽땅 연필을 볼펜에 꼽아주어서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리라고. 그래서 아이에게 아빠의 어린시절에 대한 체험을 하나 더 공유하도록 해 주리라고.

요즘 한참 글씨쓰기 연습을 하는 내 아이가 연필을 깎는 모습을 본다. 이젠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고 회전봉을 돌리는 모습이 제법 능숙하다. 내가 저렇게 글씨쓰기를 배울 때로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연필을 깎는 모습만은 내 어린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아이는 조금만 연필 끝이 무디어지면 연필을 깎는다. 나는 아이들이 연필을 너무 자주 깎는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면 아이가 변명을 한다. “연필 끝이 무디어지면 글을 쓰기가 힘들어요.”라고 또박또박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은 금세 수그러든다. 그래 내 어린시절에도 그랬었다. 그땐 그렇게 자주 연필을 깍지는 않았지만, 뾰쪽하게 깍은 연필 끝으로 종이위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을 써가는 느낌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 아이는 성격이 꼼꼼하다. 그래서 글을 정확하게 쓰려고 무척 애를 쓴다. 그렇다고 그렇게 예쁜 글씨도 아니건만 한자 한자에 공을 들여서 쓴다. 그래서 아이가 글씨를 쓰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때문에 같은 양의 숙제를 줘도 그것을 해 내는데 무척 힘들어한다. 자꾸만 글씨를 쓰는 손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손에 힘이 덜 들게 하려고, 더 자주 연필을 깎는지 모른다.

언젠가 아이가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연필이 아니라 볼펜으로 글을 쓰는 거야?”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볼펜으로 쓰면 부드러워서 더 힘이 안 들어요.” 아이는 그렇게 대답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래도 안돼. 연필로 써.” 나는 무뚝뚝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선 생각을 한다. ‘왜 아이들은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크면 볼펜으로 쓰게 될 텐데...’

아이가 글을 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느 날 그 의문이 풀렸다. 아이는 글을 쓰다가 조금만 제 맘에 들지 않으면 그 때마다 글을 지우고 다시 쓴다. 수없이 지우고 또 다시 쓰고 하는 모습이 참 정직하기도 하고, 융퉁성이 없어 보여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다. 마치 어린시절의 내 모습 같기 때문이다. 나도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쓰고 그랬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 공책에 지운 자국이 흠집처럼 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 볼펜으로 글을 쓰면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학교에선 연필로 글씨연습을 하라고 하는 것이구나.’ 깨닫고 보니 너무 간단한 원리이다. 그런데도 나는 글씨쓰기를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동안 ‘왜 그럴까?’ 하며 꽤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고 보면 무뚝뚝하기만 해 보이는 나도 아빠이긴 한 모양이다.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쓰기연습을 하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다.

나는 아이에게 내 어린시절의 추억을 하나씩 가르쳐주고 싶다. 아이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서, 그런 과거의 경험들은 거의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린시절 소중하게 간직했던 추억을 아이에게 공유하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자꾸 난다. 그래서 몽땅 연필의 뒤끝을 정리해서 볼펜에 끼워서 아이에게 써보도록 해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만든 연필을 아이에게 쥐어주며, “아빠는 어릴 적에 이렇게 해서 공부를 했단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의 게으름 탓이 그게 차일피일 자꾸만 미뤄져 간다.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도 자꾸만 미뤄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욕심들은 곧잘 실천에 옮기곤 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면, 나는 아이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쳐주는 것을 좋아한다. “부엌을 뭐라고 하는지 아니?” 라고 물으면 아이들이 합창을 한다. “정지요” “그래 맞다.” 나는 아이들의 정답에 기분이 좋아서 그만 입이 벌어진다. “그럼 할머니는?” “할매요.” “맞다 바로 그거야. 우리 아들들 정말 똑똑하네...”

나는 그런 것이 아이들에게 아빠의 추억의 세계를 공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살아간 삶과 아빠가 인생을 살아간 방황의 여정을, 결코 아이들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공유함으로써, 조금씩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내 아버님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서제에 꼽힌 책들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정신세계를 조금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었다. 언젠가 아버님은 자신의 오래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은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사투리를 알게 되면 다양한 언어적 구사력을 가지게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정신세계 또한 보다 풍부해 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인간은 언어의 감옥 속에서 산다고 하지 않는가.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어감이 다른 다양한 어휘들을 구사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감성이 보다 풍부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는 어휘들이 결국은 내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빠가 어린시절을 살아온 다양한 이야기들.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하는 다양한 체험들이, 아이들의 세상에 대한 인식에 풍부한 자양분을 공급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과 모든 슬픔을 너희들의 가슴에 담고, 그 위에 세상에 대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서 너희들 나름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거라.’ 나는 그게 아이들에게 주는 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아빠는 맨 날 책만 보시지 않니, 그리고 낮에는 열심히 일하시고, 그래서 너희들도 아빠처럼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 그런 말을 들으면 읽던 책을 놓고 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다시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그래 너희들도 책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모습들을 많이 알고, 무엇이 옳은 삶인지 열심히 살아 보거라.”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언젠가 한번 마음을 먹고는 반드시 몽땅 연필을 볼펜에 꼽아주어서 아이들의 손에 쥐어 주리라고. 그래서 아이에게 아빠의 어린시절에 대한 체험을 하나 더 공유하도록 해 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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