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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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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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의자. 거울. 수저. 키보드. 컴퓨터. 모니터...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요즘 부쩍 기억력이 떨어지는 나는 가끔 그런 친밀한 것들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아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그런 물건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가끔 기억이 나지 않을 때에는 그저 기억이 날 때까지 무심히 지내다 보면 대개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중일 때에 단어가 막혀 말이 끊어질 때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물어볼 수도 있다. 가끔은 기억력이 나쁜 것을 탓하며 겸연쩍어 머리를 긁적거리기도 하지만 그 뿐이다.

매일같이 생활에서 접하는 친밀한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겸연쩍거나 불편한 느낌 이상의 다른 느낌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물건들이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 횟수가 늘어갈 수록, 그저 나도 이렇게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하고 조금의 상념에 잠기는 것 정도일 뿐이다.

늙어간다는 것. 그래서 기억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하루가 지날수록 그만큼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가 없다면 그냥 받아들여라.’ 어느덧 내 생활신조가 되어버린 말이다.

처음에는 몸에 조그만 흉이라도 하나 나면 마음이 상했었다. 지금 내 몸을 살펴보면 자그마한 흉터들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여름은 모기에 많이 물려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에 마음 상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늙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상하는 것은 아름답게 기억하려 하였던 순간들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이다. 아내와 첫선을 볼 때 했었던 말들이 가물가물해 진다든가, 프로포즈를 할 때 구체적으로 무슨 말들을 어떻게 했는지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 같은 경우이다.

한동안은 기억하려 애쓸 필요도 없이 줄줄 외우곤 했던 그 기억들이 어느덧 가물가물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고 잊혀져 간다고 하지만, 그런 소중한 것들을 잊어간다는 것은 마음에 큰 아픔으로 남는다.

세상에는 잊어버려도 되는 것들이 많다. 나는 특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무관심하다. 특히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 그렇다. 내가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한다든가. 컴퓨터나 기타 가전기기의 작동법을 잘 모르는 것 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것을 알면 편리할 것이다. 때로는 남보다 빨리 일처리를 하고 훨씬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도 편리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들에 내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오로지 세상을 인식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그래서 약간의 괴리가 생긴다. 하루하루의 삶을 열심히 살려면 생활의 온갖 잡다한 것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에 자연히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밥을 먹고 자기 싫은 잠을 내일의 하루를 위하여 자고, 또 못다 쓴 글을 덮고 컴퓨터를 꺼야하기도 한다. 때로는 집안일도 돕고, 가족을 위해 조금의 봉사도 한다. 그리 훌륭한 가장은 아니지만, 그리 나쁜 가장도 아니라고 자부는 한다.

그러나 나머지 온갖 잡다한 일들은 기억하기가 싫다. 우리 집 전화번호며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신상명세나 온갖 잡다한 정보들은 기억하기가 싫다. 어쩌다가 펼쳐본 처세술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던,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도 나는 무심하다.

나는 내 주변의 얼마 되지 않는 가까운 사람들과 지내기에도 시간이 벅차다.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다. 무언가 해야 할 일도 더 많을 것 같은데, 그것들을 위해 관점을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또한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것들만 기억하고 싶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나고, 혼미해진 내 정신이 보관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줄어든다고 해도 결코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특히 그 해맑고 아름답기만 했던 삶에 대한 기억들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기 이전의 순수하고 깨끗하기만 했던 시절의 기억들은 영원히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유년시절. 그 시절이라고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았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도 나름대로의 애환은 있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 시절은 왠지 아름다움으로만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시간 또한 소중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의 기억들. 차츰 인생을 알게 되면서 때론 좌절하고, 때론 보람에 젖던 순간들. 때로 비애에, 때로는 다시 용기를 내며 삶을 향해 달려가던 시절에도 삶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아름다움으로 빛났었다.

즐겁고 행복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조금 더 슬픔이 적고 조금 더 살기에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해본 기억들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래서 또 하나의 목록이 추가된다.

그렇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려보면, 제법 많은 것들이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떠오를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삶은 그다지 가난하지 많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후회는 남는다. 더 열심히 더 뜨겁게 살아올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 그 시간들을 나는 어떻게 보낼지, 무엇으로 채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이것저것 많은 생각들을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인생이란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나를 이끌어가고 말지 않았던가.

새로운 상황이 눈앞에 나타나면 나는 또 새로운 상황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삶은 방랑에 비유되는 것이다. 내가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요청에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후회와 미련을 조금이라도 덜 남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시간을 아낀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삶에 곤하여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날이 올 때, 지친 육신을 자리에 눕히면서 아름다웠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내 인생의 황혼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내 마지막 여행길이 그리 쓸쓸하고 무참한 기분에 젖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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