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듯 어루만져 가꾼 밭곡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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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듯 어루만져 가꾼 밭곡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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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에 여유를 주는 내 작은 텃밭

 
   
  ^^^▲ 파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파 보니 이렇게 이쁘게 컸군요. 맛 있겠죠?
ⓒ 김규환^^^
 
 

농사를 농사답게 지으려면 어떻게 지어야 한답니까? 또 얼마를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고구마, 들깨, 콩, 무, 배추, 땅콩, 고추, 상추, 돌산 갓을 심었습니다. 친구네 나무농장 빈땅을 활용합니다.

논농사는 심어 놓기만 하면 다소 쉽습니다. 모내기만 하면 손이 많이 가지 않습니다. 피사리도 할 일이 없게 되었지요. 밭농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심은 다음에 애 보듯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본능에 따라 삽니다. 배고프면 엄마 젖과 우유를 찾고, 단 것 한 번 맛들이면 끊임없이 달라 합니다. 응가 마려우면 치워달라 합니다. 졸리면 보채며 재워달라 하죠.

이 뿐이 아닙니다.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 말은 못해도 어김없이 신호를 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항상 긴장하고 돌봐야 합니다. 잘 때도 옆에 사람이 없으면 어찌된 영문인지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밭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씨 뿌려 놓고 싹이 텄다고 맘놓았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씨뿌리고 나서 발아가 잘 되었는가를 살피고,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해줘야 합니다. 때론 추위를 견디도록 도와줍니다.

해충을 잡고 병을 얻으면 더러 약을 쳐줘야 합니다. 퇴비를 밑거름으로 해서 거름이 부족하면 질소(N), 인산(P), 칼륨(K) 비료를 적당량 뿌려서 발육을 돕습니다. 배수와 수분을 조절함은 물론 잡초를 뽑아야 합니다.

 

 
   
  ^^^▲ 나무 밭에 콩을 심으면 풀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곳은 정말이지 풀은 왜 그리 잘 자라는지 사람 환장하게 합니다. 그걸 잘 이겨내면 수확을 기대할 수 있어요.
ⓒ 김규환^^^
 
 

밭작물 관리에 있어 김매기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봄에는 쑥과 개망초가 난립니다. 잘 매뒀다 생각하고 일주일 여 가지 않았다가는 1년 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엉망진창이 되어 온통 풀밭으로 변합니다. 정말 힘겹습니다.

농사꾼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1년에 풀이 한 번만 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알기론 풀 씨가 푹 잠을 자고 풀 스스로 깨어나야 할 때 종류와 시기를 달리해서 다섯 번 까지 돋아나 밭을 점령하고 맙니다. 장마 만나면 풀이 작물을 덥습니다. 그러니 밭에 살지 않고는 누구도 해결하기 힘든 게 김매기입니다.

김은 어머니, 누이들의 허리와 무릎 관절을 망가뜨린 주범이기도 했습니다. 여름 뙤약볕 아래서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아낙들이 우리를 먹여 살렸습니다. 호미를 들고 살지 않는 한 해결하기 힘듭니다.

요즘은 편리한 방법으로 농약 통을 지고 다니면서 풀 죽이는 제초제를 뿌려 주니 일손은 덜 수 있습니다. 속도도 빠르구요. 하지만 이 마저 쉬운 일도 아니고 부작용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게 농사입니다.

그래서 서울 안암동에서 인천 계양산 자락까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밭작물이 걱정스러울 때는 두세 번을 오갑니다. 그 조그만 농사를 지으며 자가용 끌고 왔다갔다하기가 밑지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심지 않았으면 모르되 농사짓기를 맘먹었으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마음이 답답할 때 가기 적당한 거리입니다. 가는데 1시간 정도 걸리니 차 타고 밖으로 나가는 기분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간혹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까지 내달려 가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그래도 마음 편한 그 곳에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좋은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한 번 자랑 좀 늘어놓아 볼까요? 그건 별 게 아닙니다. 아주 작은 기쁨입니다.

한 이유는 여러 채소를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여러 곤충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이 늘 반기니 아니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남새를 먼저 소개할까 합니다.

 

 
   
  ^^^▲ 고구마를 심고 21일 쯤 뒤 김매다 잘못 하여 뽑힌 고구마 줄기. 저 뿌리의 마디에 고구마가 생깁니다.
ⓒ 김규환^^^
 
 

1. 고구마

고구마를 심은 지 꽤 오랩니다. 5월 5일 쯤 심었던 것 같습니다. 줄기가 붉으스름한 것은 물고구마에 가까운 호박고구마입니다. 푸르스름한 줄기는 밤고구마죠. 밤고구마는 굽거나 삶아서 뜨끈뜨끈할 때 먹으면 맛이 좋습니다. 하지만 식으면 포근포근한 맛이 떨어지고 목이 메일 정도로 팍팍합니다. 그래도 신김치 있으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하지만 김칫국물 없이도 먹을 수 있어 오래두고 달디단 물이 자르르 흘러 빠져나오는 건 호박고구마입니다. 호박고구마는 긴긴 겨울 밤 생으로 깎아 먹어도 물기가 많아 요긴한 간식거리가 되죠. 길쭉한 것은 칼로 도톰하게 잘라 화로 위 석쇠에 구우면 구수한 맛을 풍기며 방안 공기를 온화하게 합니다.

벌써 몇 번이나 고구마 순을 따다 먹고 말리기를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나무 밭고랑 사이에 심어둔 고구마 밭을 얼쩡거리다가 결국 참지를 못했습니다. 얼마나 크게 알이 들어 있는가 확인하지 않고는 도저히 집으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저걸 파봐?’
‘참자.’
‘그래, 한 번 파 보자.’

줄기를 찾아 뿌리 하나를 후벼팠더니 붉은 밤고구마가 아이 조막 만하게 들어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물을 발견해도 이리 기쁠 수가 있을까요? 산을 밭으로 만든 곳이어서 그런지 선홍색에 가까웠습니다. 밭을 일군 첫해니 올해 고구마 수확은 자못 기대됩니다.

추석 때 조금 캐서 차례 지내고 서리 오기 전날 캘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두 달은 남아 있잖아요. 그 땐 뿌리가 더 많이 퍼지고 주변 양분을 다 빨아먹어 주먹 크기, 어른 머리만큼 대단한 것도 캘 것 같아 기쁩니다.

고구마 캐는 날은 담은 몇 개라도 나누는 작은 잔치를 열려고 합니다. 아이들도 데리고 갈려고요. 같이 가실래요?

 

 
   
  ^^^▲ 비를 잘 이겨내고 살아남은 무의 어린 싹. 곧 뿌리가 굵어질 것입니다.
ⓒ 김규환^^^
 
 

2. 무와 배추

무와 배추는 8월 초에 심었습니다. 무는 잦은 비로 씨를 아끼지 않고 넣었는데도 녹아 없어지고 묵은 씨를 뿌린 곳은 잘 나지 않아 씨앗을 사서 보충해 넣었습니다.

솎아서는 겉절이를 하든가 고추를 갈아서 물김치 담가 먹을 겁니다. 무 뿌리가 커지면 한두 포기씩 뽑아와 겉잎은 떼서 시레기국 끓이고, 속잎은 뿌리와 같이 썰어 젓갈 넣고 생채를 해 먹을게요. 벌써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네요. 거기에다 햅쌀로 지은 함치르르한 밥에 비벼 먹겠습니다. 사각사각 씹히는 맛에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매콤한 맛이 나겠지요?

무는 뿌리가 얼기 쉬우니 배추보다 일주일 빨리 수확해서 배, 유자, 파, 마늘, 생강을 적당량 넣고, 맑은 물 시골에서 떠와 제 고향말로 ‘싱건지’라고 하는 동치미를 담가 약간은 시큼하게 만들어 주면 아이들도 잘 먹을 겁니다.

 

 
   
  ^^^▲ 나무밭 사이에 심어 놓은 배추가 뿌리박음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랄 채비를 합니다. 그래도 물러주저 앉은 건 많지 않아 다행입니다. 올해는 김장 배추값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김규환^^^
 
 

배추요? 쌀이나 고추와 마찬가지로 대단한 존재입니다. 배추씨를 뿌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며칠 간 질질 설사한 아이처럼 웬만해서는 배추도 초반에는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직접 파종을 했을 경우 3번까지 씨를 넣으니 얼마나 힘든 작업이겠습니까? 그래서 모종을 미리 준비해 갔습니다.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겠지만 배추는 가을 배추가 맛있습니다. 옆으로만 퍼질 것 같은 작은 놈이 속이 노랗게 채워질 때가 되면 한 포기 뽑아 쌈 싸먹는 게 최곱니다. 한 곳에 2~3 포기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솎아서 비타민을 섭취하려 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오줌을 받아서 산길로 이고 가셨습니다. 냄새 풀풀 났지만 배추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조금씩 부어주면 잘도 컸습니다. 유기농이 별 겁니까? 화학비료를 안치고 농약 안 치면 됩니다. 퇴비와 오줌을 주고 손으로 직접 해충을 잡아주면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렇게 키우면 흙만 털고 먹을 수 있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즐겁지 않을 수 있겠어요. 믿고 맘껏 먹을 수 있는 채소 흔치 않잖아요. 그래서 더 기쁩니다.

김장하던 날은 꼭 초청하겠습니다. 요샌 이것도 일이라 힘들다며 마다하지만 우린 갖은양념을 준비하여 멸치젓갈 넣고 전라도식으로 하겠습니다. 돼지 목살 푹 삶아 빨간 양념을 넣고 절인 배추로 싸서 술 한잔 곁들이면 이 보다 맛난 음식이 없습니다.

 

 
   
  ^^^▲ 들깨 모종을 세번 째 하는 중입니다. 두 번째보다 마지막 저 씨앗이 훨씬 더 잘자랐습니다. 역시 퇴비를 주니까 다르더군요.
ⓒ 김규환^^^
 
 

3. 들깨

보통 깻잎이라고 하는 건 여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들깻잎을 말합니다. 참깨 잎은 깨 벌레 외엔 먹질 않습니다. 상추와 달리 들깨는 여름에 더 어울리는 쌈 거리죠.

시장에서 사는 깻잎은 모양 좋고 때깔마저 대단합니다.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마저 없습니다. 뒷부분에 붉은 반점 하나 없지요. 어찌 길렀는가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초반에 심은 들깨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 세 번 씨를 뿌리고 퇴비를 한 번 쳐줬더니 새파랗게 잘 자랍니다. 보통 뻣뻣해지고 두꺼워져서 이젠 수확을 준비해야 할 철에 제것은 이제야 잘 자랍니다. 찬바람 불 때까지는 깻잎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벌레가 다 갉아서 보기 흉한 깻잎을 따와서 파, 마늘, 양파에 고춧가루, 참깨 듬뿍 넣고 조선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깻잎 김치를 담가 먹고, 조림도 하고 쌈도 싸 먹었습니다. 향이 여느 시장에서 사와 맛 볼 수 있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깻잎을 딸 때부터 진하게 벤 향이 물에 씻을 때도 나니 입 속에 들어갈 때는 오죽하겠습니까?

올 가을엔 들깨 털던 밭고랑에 한 번 가보십시오. 알알이 빠져 나오는 들깨보다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그 내음을 맡을 수 있습니다. 정신까지 맑게 해주잖아요.

 

 
   
  ^^^▲ 이렇게 갉아 먹어도 약 안 치고 가만 뒀습니다. 저걸 따서 먹는 기분 묘하죠. 근데 말입니다. 벌레들이 좋아하는 것이 몸에는 훨씬 좋다는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벌레도 먹지 않는 걸 사람이 먹으면 어찌 될까요?
ⓒ 김규환^^^
 
 

고추와 콩, 땅콩, 상추는 다음 기회에 자랑을 늘어놓겠습니다. 올해는 씨뿌림이 거의 끝나갑니다. 올해 내년을 준비하면 즐거운 한 해가 되지 않을까요?

 

 
   
  ^^^▲ 잘 자라고 있는 들깨잎, 너무 베게 자라 뽑아서 자투리 땅에 세그루씩 심었습니다. 100포기 정도 심었으니 올 가을엔 실컷 따 먹을 수 있을 겁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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