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채 몬시뇰^^^ | ||
천주교의 원로이신 정의채 몬시뇰이 정운찬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을 빌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과 무리한 세종시 수정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구절구절이 너무나 옳은 말씀이라 무어라고 보탤 구석이 없다는 것이 나의 소감이다. 절제된 언어와 표현은 요즘 ‘보수’를 표방하는 집단이 퍼붓는 ‘막말’과 크게 비교된다. 아니 애당초 비교를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신문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정의채 몬시뇰을 ‘보수’라고 지칭했다. 천주교 사제를 ‘보수’와 ‘진보’로 분류하는 기준은 주로 사회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사회적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보’이고, 사제(司祭)의 본령은 사목(司牧)이라고 생각하면 ‘보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분류는 자체로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치 독일과 공산체제를 경험한 카롤 보이티야 신부(요한 바오로 2세의 원래 이름)는 폴란드에서 사목 활동을 할 때 공산당국에 대해 저항하는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내심을 갖고 때를 기다렸다. 젊은 나이에 교황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는 조국 폴란드의 해방과 동유럽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니었더라면 동유럽 공산체제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공산체제를 경험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산주의야말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제도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조국 폴란드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해방신학에 반대했고, 또 낙태와 피임 같은 윤리문제에 엄격했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화해에 헌신한 교황이었다. 그 점에서 천주교에서 말하는 ‘보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집단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요즘 우리나라의 ‘보수’는 ‘MB 정권에 대한 무조건 지지’를 의미하게 되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양식이 있다는 이른바 ‘보수 지식인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현안은 ‘4대강’으로 상징되는 정권의 오만과 독주, 그리고 인권과 법치의 실종이다. 이런 현안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한국의 ‘보수’는 MB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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