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블 데이터의 정치적 담론
스크롤 이동 상태바
스테블 데이터의 정치적 담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선협의 정치펀치>

데이터의 장악

예컨대, 다량의 서류(또는 이익집단)가 사무실(또는 정계) 안, 밖을 춤추고(또는 데모로) 흘러 다닌다고 가정하자. 물론 사무실(혹은 정계) 안, 밖은 혼란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중에서 한 장의 종이(혹은 이익집단)에 주목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종이(나아가 이익집단)가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결국 다양한 입자(粒子)가 파고들거나 섞갈려 움직이고 있을 때, 그 중에 있는 어떤 하나를 상정, 정지하고 있는 상태로 간주함에 따라 난잡한 움직임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교통이 매우 혼잡한 도로상에 있을 때, 주변을 오가는 자동차의 흐름을 보노라면, 겉잡을 수 없이 엄청난 혼돈상태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의 한 대를 정지한 것으로 취급하게 된다면 그 자동차를 중심으로 다른 차를 인식할 수가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번에 열대의 전화를 받은 전화교환수가 혼란을 해결하는데는, 가장 최초로 걸려 온 전화는 어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컨대, 그 결정이 설령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어느 전화기를 잡으면 좋을 것인가 결정한 때로부터 혼란은 그 순간 제압된다.

세 건의 긴급사태와 한 건의 사고에 동시에 대응할 정치인은, 우선 어느 것인가 하나의 문제를 선택하여 그 해결에 전념함에 따라 질서를 회복할 수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양한 입자가 몰려들 때는 하나의 데이터, 하나의 요인, 하나의 상황을 선택하게 되면, 혼란을 멈추게 할 수가 있다.

어느 것이나 하나의 문제를 뽑아 내, 그것에 직면,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스테블 데이터 곧, 확실한 데이터로서 다른 문제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이 되는 것이다. 복잡하게 보이는 지식체계도 상세하게 관찰해 보면, 단 하나의 데이터가 중심이 되고 다른 것은 그 외연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테블 데이터란?

그 데이터가, 스테블 데이터로서, 그 스테블 데이터를 부정하게 된다면 지식전체가 완전히 붕괴되고 마는 것이다. 스테블 데이터는 반드시 올바른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스테블 데이터란, 사물이 혼란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그 이외 주변의 악순환을 다잡아 정리, 파악하기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을 이른다.

의욕만 앞서는 아마츄어 정치가에게 정치시스템의 활용방법을 가르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만일 아마츄어 친구가 당신의 설명을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이해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그가 스테블 데이터를 장악하는데 실패한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면 좋다.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의 사실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사실을 붙잡는 것은 간단하게 된다. 극히 보통의 능력을 가진 정치인을 전제로 하여 설명한다면, 그 정치인이 혼란에 휘말리는 것은 하나의 사실, 하나의 사물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혼란상태는, 그것이 아무리 커다란 혼란이라 할 지라도, 그리고 비록 해결하기가 몹시 어려워 보인다 하더라도 다만 데이터나 요인이나, 입자의 집합에 다름 아니다. 집합체라고 하는 것은 분해할 수가 있다는 대에 그 묘미가 있다.

무엇보다 그 정치적 혼란의 잇슈 중에서 하나를 끄집어 올려 그 데이터를 확실하게 파악할 일이다. 그로부터, 그 데이터와 관련된 다른 데이터가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혼란은 깨끗이 장악된다. 데이터 상호간의 연결고리를 알게 된다면, 혼란을 완전히 수중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아마츄어 정치인에게 시스템을 움직일 비결을 가르칠 경우, 한꺼번에 많은 데이터를 부여한 뒤,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같은 방략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그는 강펀치를 맞아 혼란에 부딪친 사람처럼 좌왕우왕 하게 되고 만다.

당신은 혼란을 해결하는 실마리 곧, 하나의 데이터를 발견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그 아마츄어 정치인에게 <이것은 정치 시스템이다>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하나의 데이터가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확신할 수 없다라 던가.

또는 진정한 질서를 알지 못하겠다는 정치인을 향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주문이 한꺼번에 투척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이것은 정치 시스템이다>라고 그에게 가르치고 그 사실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직면(Confronted)

건들어 보게 하고, 쓸어 보게 하고, 눌러 보게 하면서 확인시키는 것이다. 직면直面, 바로 그것이다. 해빙네스Havingness 다. <이것은 정치 시스템이다>라고 그 젊은이에게 말하고 확신시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에 놀랄 수도 있으나, 아마츄어의 확신이 점진적으로 높고 깊어지는 것에도 또한 놀라게 될 것이다.

시스템을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가지가지 복잡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지만, 우선 최초로 <하나의 데이터>를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초의 데이터가 무엇인가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간단하고 기초적인 데이터>라면 충분한 것이다.

당신은 그 아마츄어 정치인에게 그 시스템이 무엇을 만드는 것에 필요하며 왜, 그가 선택한 것인가를 가르치고, 최종적인 생산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리하여, 무엇 때문에 이 시스템을 조작하는데 그가 뽑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를 말하여 주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기초적인 데이터를 그에게 정확히 이해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아마츄어 정치인, 그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혼란이란 불확실한 것이다. 혼란이란 바보상태에 함몰되는 현상을 말한다. 혼란이란 불안정한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혼란을 고찰하게 된다면 혼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확실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혼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지성이란 무엇인가? 혼란을 해결할 능력이다. 안정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혼란을 통과하는 능력인 동시에, 혼란 중에 질서를 회복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확실성, 지성, 안정성이란, 혼란이 없는 상태, 혹은 혼란을 처리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운運은 혼란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정치적인 운이란 컨트롤이 먹혀들지 않은 우연성에 내 맡겨 정치적인 무엇인가를 처리하려는 희망'을 이른다. 운에 기대한다는 것은 컨트롤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파시= Apashi =無氣力'이라고 말한다.

좋은 컨트롤과 나쁜 컨트롤이란 것이 있다. 양자의 차이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차이다. 좋은 컨트롤은 , 확실하고 명쾌한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나쁜 컨트롤은, 불확실하고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이 가지 않는 것이다.

정치사회는 잘 컨트롤 되게 되면, 안심 감을 가지게 되지만, 나쁜 컨트롤을 받고있는 상태아래서는, 결코 안심 감을 가질 수 없다. 어떤 정치인이 아침에 한 말과 그날의 오후에 말한 것이 모순된다고 해보자. 그리고 두 사람의 정치인이 제각기 다른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 정치인은 나쁜 컨트롤의 실천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인품이야 어떻든, 그의 주변은 항상 불확실과 불안정이 휩싸고 돌게 된다.

컨트롤(Control)

불확실하고 어이없는 컨트롤이 실제로 만연하게 되면, 컨트롤이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혼란 중에 질서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컨트롤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은 무엇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물이나 자기의 몸, 그리고 자기의 사고를 컨트롤 하지않으면 안 된다.

혼란이란, 컨트롤 되지 않은 난잡 상을 말한다. 이 난잡 상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혼란을 해결할 수가 있다. 난잡 상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사람은 실제 혼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좋은 컨트롤과 나쁜 컨트롤의 차이가 더욱 명료하게 된다. 좋은 컨트롤과 나쁜 컨트롤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다. 결국 명확하고 철저한 컨트롤이라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좋은 컨트롤인 것이다. 불명확하고 불확정한 컨트롤이 되면, 다음에 무엇이 밀어닥칠 것인가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쁜 컨트롤인 것이다.

'의도意圖'도 또한 컨트롤에 관계하고 있다. 건설적인 목적이나 파괴적인 목적에도 컨트롤은 가동될 수 있다. 파괴를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나쁜 컨트롤이 가동된다.

혼란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관찰해 보면, 그 전모가 터무니없이 큰 것이라는 것에 신경이 간다. 혼란 그것을 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라고 생각될는지 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생명을 고려할 경우, 우리들이 '악惡'이라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혼란이 관련 되 있다.

정치인이 만일 혼란을 수습할 수가 있다면, 자기의 주의를 건설적인 방향에로 자유롭게 향할 수가 있다. 혼란의 와중에 빠져있는 한, 생각에 떠오르는 것은 파괴적인 것뿐이다. 그러한 정치인이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혼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처음에 어떻게 혼란을 혁파할 것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설명해 온 바와 같이 이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다양한 입자가 제 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혼란상태에서는 그중 어느 하나의 입자에 주목하여, 다른 모든 입자의 움직임과 비교해 볼 일 이다.

그렇게 되면, 금새 현재의 혼란이 보잘 것 없어 보인다. 전체의 일부를 스테블 데이터로서 다루게 되면 다른 부분은 그것에 동반하여 정리된다. 그렇게 하여 긴급의 쟁의사태나, 시스템의 트러블이나, 정치상의 문제, 그리고 생활 그 자체에서 벌어지는 혼란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누구나 완전히 자유롭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도대체 어떤 시스템으로 짜여져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들은 앞장에서, 정치인이 정치활동을 개시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개혁해 나가는데 영향을 주는 요인을 여러 가지로 진열해 보았다.

정계의 겨우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실행하고 있는 것처럼, 우선 '나는 정치뱃지를 획득,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하나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이 문제 전부를 훌륭히 처리할 수가 있다. 이것을 유일의 신념으로 지속시켜 나간다면 정치생명에 관한 한 불확실한 부분이나 불안감은 점점 작아져서 혼란도 감소하게 된다.

여기에 K씨라는 한사람의 정치인이 있다. 그는 젊었을 때,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지식을 아무것도 갖지 않았는데 <나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정치뱃지를 획득하고 그것을 지켜나갈 수있다. 그래서 이 이상 정치생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이 지날 수 있다>고 결정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K씨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히 추방당했다. 그리하여 10 주간 이상이나 정치실업상태에 내몰리고 말았다. 이윽고 다른 직업을 발견했으나 그는 이전보다 자신을 잃고 정신상태도 불안정에 이르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대답은 이 스테블 데이터 이론의 대립 각에 있었다. 이른바 스테블 데이터를 쥠으로서 혼란을 수습하는데 한몫 할 수 있었으나, 일단 그 스테블 데이터가 요동치게 되면, 다시금 혼란이 재발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혼란이 정지한 때를 상상해 보자. 혼란은 의연히 산재한 상태지만 정지하고 있는 것이다. 왜 혼란은 정지하고 있는가. 그것은 스테블 데이터를 끌어 들였기 때문이다. 예컨데 당 총재에게 신랄하게 꾸지람을 받은 한 정치인이 어느 날 화가 나서 당을 뛰처나가 주저없이 폭로전을 감행했다고 하자. "총재란자가 형편없는 악당이다'라면서.

이는 하나의 결단이다. 그 정치인의 정치적 결단이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는 별도로 하고, 혼란의 와중에서 채용된 스테블 데이터의 하나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결단을 내린 단계에서 그의 기분은 개운해 졌다.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라면서.결국 그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그는 '총재나 그 주변 정치인은 모두 악당이고 도둑놈이다'라는 스테블 데이터를 손에 쥔 것이다. 데이터 자체는 진실은 아니지만, 하나의 스테블 데이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어느 날, 그가 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당 총재가 성실한 태도로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빗진 돈까지 갚아 주었다. 순식간에 그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총재가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니까, 본래라면 이러한 친절이 혼란을 불러일으킬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혼란에 빠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스테블 데이터가 요동을 쳤기 때문이다. 자기의 스테블 데이터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과거의 혼란이 전부 그대로 상기된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