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주장대로 '의료허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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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주장대로 '의료허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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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와 한국의 의료환경의 차이점

조선일보가 ‘의료허브’라는 제목으로 ‘싱가포르 형 의료모델’을 바람직한 것으로 내세우는 기획특집기사를 실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한해에 15만 명의 외국인이 치료를 위해 방문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이로 인해 작년한해 동안에 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2년까지100만 명의 외국인환자를 유치해서,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니 우리도 그들을 배우라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한 인근국가와 같은 방법으로 경쟁해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의 하나로 생명공학 산업과 의료산업을 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점차로 그 결과가 나타나서 싱가포르는 아시아인의 ‘의료허브’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를 위해 자국민의 75%에 대한 표준적 의료서비스는 국·공립병원에서 담당케 했고, 민간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각종규제들을 과감히 없앴다고 한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의 민간병원은 금융기관이나 일반투자자가 지분을 소유하는 주식회사로 운영되고, 싱가포르 주식시장(SESDAQ)에 상장된 병원기업이 6개나 된다고 한다.

지난해 각계 전문가들을 정부가 모아서 헬스케어서비스 워킹그룹(HSWG)을 만들어서 수립한 ‘의료허브’ 개발전략은 ‘안전하고 우수하다는 브랜드 이미지의 강화’ ‘원 스톱 진료시스템’ ‘우수한 해외의료진의 영입’ ‘해외네트워크의 강화’ 등이다.

이중 ‘브랜드 이미지의 강화’를 위해 미국의 존스 홉킨스 병원이 미국 밖에선 최초로 싱가포르에 세워졌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치료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일부의사는 미국에서 파견된다. 모든 암 환자는 미국 내의 의료진과의 영상회의를 통해 치료방침이 결정된다. 싱가포르 국립의대 학생들은 존스 홉킨스 의대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고 한다.

‘원 스톱 진료시스템’을 위해서 외국인 환자가 싱가포르 도착 시 병원직원이 공항에 마중을 나간다. 치료기간이 길어져서 비자기간이 지나면 병원 측이 알아서 연장시켜 준다. 의료서비스는 최고급 호텔기준으로 제공된다. 따라서 환자에 대한 서비스는 편의제공 차원이 아니라, 최상의 고객만족을 목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기자는 우리나라가 의료를 ‘보건’으로만 보는 반면에 싱가포르는 ‘산업’으로 보기 때문에 이만한 발전이 가능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도 조속히 외국 계 병원들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은 영리기관으로 인정하도록 법을 바꾸고, 외국병원들의 국내에서의 영업수익을 해외에 송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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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은 풍부한 고급인력뿐이지 않은가. 그러나 싱가포르와 우리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꼭 같지는 않은 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선 싱가포르는 자국민에 대한 표준적 의료서비스는 국공립병원이 담당하게 하고, 민간병원에 대해서는 각종규제들을 없앴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에 도대체 국공립병원이 몇 개나 되는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국공립병원은 시간이 갈수록 환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의 실정에서는 자국민 대부분의 진료를 국공립병원에 맞길 수가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의료계의 일부에서는 공공의료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일고 있는 형편이다. 민간의료에 대한 일부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는 나도 이의가 없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의료의 발달을 제한한다.

그러나 규제의 약화와 규제의 철폐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에서는 국민적 건강보장기능으로서의 의료체계가 ‘달러벌이 수단’으로서의 의료체계보다 보다 우선해야 한다.

우리는 싱가포르와는 달리 동남아시아의 범화교권이나 중화권과의 친밀도가 높지 않다. 일본과의 경쟁도 쉽지가 않다. 영어를 사용하는 싱가포르와는 달리 언어구사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화적, 정서적 친밀도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리적으로도 중국과 일본 외의 다른 동남아시아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외국인 환자’의 유치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현재 한해에 1만 명의 내국인이 수준 높은 진료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외의료기관을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논리를 결여한다. 싱가포르와는 달리 외국의료기관이 국내에 들어오면, 그 대부분의 수요계층은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이 될 것이다.

해외시장을 겨냥하여 규제를 철폐해 병원을 기업으로 만들어 의료시장을 고급화하였을 때, 이들 고급화된 의료수요의 대부분은 외국인 환자보다는 내국인 환자가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어려움과 상관없이 고급브랜드에 대한 부유층의 선호도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또 이렇게 의료를 고급화시켰을 때 그 부분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만약 대폭 고급화된 의료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거덜 난 건강보험재정이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도 건강보험 재정을 보호하기 위해,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급여대상까지도 제한하고 있지 않는가?

보험급여를 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국민의 소득수준에 따라 의료이용이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암 보험 등의 민간보험의 확산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의료이용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더 강화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의료의 잔치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고급의료 수요에 맞추기 위해 민간의료보험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 결과 민간보험과 건강보험에 이중으로 가입해야 하는 민간보험가입자들은, 건강보험의 의료보장혜택이 강화되어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지불하기를 싫어할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저소득층의 전반적인 의료보장 수준이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외국계 병원을 유치하고 규제만 철폐하면 ‘의료허브’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 안이한 것이다. 한 국가의 사회보장체계인 의료를 그런 가벼운 발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나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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