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대로로 간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군자는 대로로 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이가 당당하게 살아가길 희망

학창시절 도서관에 않아있기가 지겨우면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러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나와 비슷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눈치로 알아채면 함께 도서관을 벗어납니다. 학교 앞 허름한 주점에 않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횅하니 지나가 버리고 어느새 어둠이 가득합니다.

그때야 ‘아차’ 하는 생각이 납니다. 가방을 챙겨오지 않은 것입니다. 주점에서 교문까지, 그리고 교문에서 도서관까지의 그 먼 거리를 왕복으로 다녀와야 합니다. 주점에 갈 때마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도 한번도 아예 가방을 챙겨서 내려온 적은 없었습니다. 결코 지키기가 쉽지 않은 ‘몇 잔만 마시다 다시 올라가서 공부하자.’는 것이 우리의 신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너무 부끄럽지는 않을 만큼, 몇 번은 그런 신조를 실제로 실천에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힘든 한밤의 순례를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길을 걸으면, 친구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공기를 쐬며 길을 걸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친구 중 한명이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밤이 늦으면 정문의 수위아저씨는 큰 문을 잠그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작은 쪽문만 열어 놓습니다. 수위아저씨로서는 당연한 조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꼭 큰 문으로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수위아저씨에게 왜 문을 잠구었냐고 항의를 하다가, 나중에는 닫힌 철문사이로 발을 넣고 문을 기어서 넘어갑니다.

술에 취해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친구로 여기지 않는 것이 내 술동무들의 불문율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술을 마셨다고 다른 엉뚱한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꼭 정문에서는 그런 일이 되풀이해서 벌어지곤 했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로서는 참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구가 다칠까봐 말리랴, 수위아저씨 달래랴 그럴 때마다 진땀을 빼곤 했습니다.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대체 술만 마시면 왜 그러느냐?” 그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는 친구의 말이 기가 찹니다. “자고로 옛 성현의 말씀에 군자는 대로행이라고 했으니, 어찌 사나이 대장부가 큰 길을 두고 쪽문으로 다닐 수가 있느냐.”라며 꼬부라진 목소리로 ‘문자’를 써가면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반은 맞고 반을 틀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반은 기가 차고 반은 피식 웃음이 나오곤 했습니다. 법학도인 그 친구는 술이 취하면 가끔 그렇게 고전을 인용하며 엉뚱한 행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맨 정신일 때는 법철학적 개념을 늘어놓으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나의 취약부분인 법에 대해서 조금은 귀가 뚫리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참 어렵게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습니다. 사회정의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도 맨 날 술이고 밥이고 얻어먹기를 좋아하던 자신에 대한 변명 비슷한 것을, 그 친구는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 나에게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친구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를 탓해야 했습니다.

사실 그의 여러 가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조금 미운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굶어도 절대로 표시를 내지 않고, 돈이 없어도 궁한 표를 내지 않는다는 게 내 생활신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사람 좋은 그 친구가 늘 말하는 법철학과 정의관이, 왜 자신의 생활과는 맞지 않는가가 늘 조금씩은 궁금했었습니다.

사흘을 굶으면 배겨낼 장사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어려서부터 시작된 그의 어려운 생활과, 마음의 고통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을 그때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얄팍한 생활신조와 그가 놓인 어려운 처지사이의 크나큰 차이가, 우리 사이에 그런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가 그토록 엉뚱하리만큼 ‘대로 행’을 고집했던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말 그대로 군자의 길을 걷고자 애쓰던 그의 방황이 만든 결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좌절과 슬픔이 취기를 빌어서 표현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주는 차별과 고통에서 벗어나서 넉넉히 넓은 길을 가고 싶은 그의 욕구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살이에 바빠서 그 친구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습니다. 가끔 친구의 생각이 날 때마다 궁금해집니다.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을 그 친구가 지금은 그토록 원하던 대로를 걷고 있는지. 혹은 또 다른 이유로 대로를 걸어야 한다는 미련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고 아직도 슬픔처럼 몰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옛 성현들이 ‘대로’라고 표현했던 바른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바른 길을 항상 마음에 두는 ‘군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살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당당하게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