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속에 길이 있는지 몰랐어.
늘 내 앞에선 망망한 바다였잖아, 넌.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요동치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넓고 깊은 바다.
그렇게 너와 안녕을 고하고
한참 뒤에 다시 돌아봤을 때.
앙상하게 속을 드러낸 니 속에
길이 있더라.
나에게로 향해 있던, 좁지만 뚜렷한 길이었더라
- 씨네21에서 -
2. 선물
옥탑방고양이가 끝난지도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그 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선물'이라는 노래는 지금도 내 맘을 여전히 울리고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일 거다.
그레이스가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도착한 후부터, 그녀는 순수하게 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한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진심으로 아름다운 선물. "너는 나에게 하늘이 내려준 이 세상 가장 큰 선물이죠"라고 말하고 싶었던.
3. 배신
그러나, 도그빌의 마을 사람들은 경계심과 상냥함,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다양한 표정들에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레이스에게 적당히 마음을 열어주는 듯 하지만 제각각 다른 이유에서 그들은 자신 속에 감춰진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고 그레이스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근원적인 것을 선과 악의 경계에 두지 않는다. 대신, 선을 포장한 위선에 영화의 근원을 두고 그레이스를 점점 더 혹독한 시련 속으로 몰아부친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점점 더 불쌍해진다. 그녀가 마을을 빠져나가길 간절히 바래보지만, 그조차도 <도그빌>사람들의 놀림의 대상이요, 또한 가장 추악한 진실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4. 진실
차라리, 진실은 밝히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톰은 그레이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마지막 순간까지 톰의 지식은 기회주의적인 단면을 드러내면서, 결국은 속물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이 마을은 폐쇄되어야 할 마을이고, 권력의 속성은 또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 그레이스 역시도, 권력의 맛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속물이 아니던가? 라는 이 기괴한 물음에 대한 해답. '앙상하게 속을 드러낸 니 속에 / 길이 있다'는 저 윗글의 교훈처럼 우리는 이제 <도그빌>에서 "앙상하게 속을 드러낸" 거짓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거짓이 진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그빌>은 그렇게 진실을 드러내었고, 영화가 끝난 후 밀려드는 괴로움과 후유증은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시 저런 거짓과 또 학대로 가득 채워져 있으리라는 끔찍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생존을 위협하는 권력 앞에서 그 누가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 불가능성에 도전하고픈 욕망마저 느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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