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도 아닌 그저 고만고만한 사소한 일들이어서, 거절해도 인격에 크게 흠이 날 만한 일도 아니지만 그는 그런 걸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사람 좋은 것으로 소문난 김 형에게 최근 몇 주 주말마다 그런 일들이 계속 생기는 것을 보며 조금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내가 오디오 턱을 못 얻어먹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다 김 형이 오디오를 못 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때문이었다. 김 형은 내가 어렵사리 그런 이야기를 그런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면 그냥 마구 손을 흔들어 댄다.
얼마 만에 마음을 먹고 장만하기로 한 오디오인데, 이번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나가서 ‘폼나게’ 사기 위해서 미루고 있을 뿐이니 걱정을 하지 말란다. 그리고 오디오 턱도 낼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자신이 그렇게 장담을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다음 주도 다음 주도 그에겐 주말마다 일이 끊이지가 않았다. 그러자 슬슬 내 마음에 걱정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목돈이 생겨서 사려고 마음먹은 오디오 시간이 지나면 그 목돈이 푼돈이 될 터인데...
나는 다음에 그를 보면 이젠 평일에 가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 볼려고 마음을 먹었다. 원래 계획대로 주말에 온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서 느긋하게 골라보고, 저녁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멋진 기념파티를 벌이는 것도 좋지만 간소하게라도 빨리 장만하는 것도 좋지 않으냐고.
사실 우리 집에는 오래전부터 김 형네에게 선물하려고 준비해놓은 CD 몇 개가 잠을 자고 있는 터였다. 그것을 선물하기 위해서라도 김 형이 빨리 오디오를 장만하도록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터였다.
요즘 내 사무실 방문이 뜸하던 김 형이 마침내 들렀다. 요즘은 부근에 올 일이 없어서 이전처럼 매일같이 오지는 못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렸다는 것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묵혀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오디오는 도대체 언제 살 거요?”
갑자기 김 형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그는 말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한다. 직설적으로 바른말을 잘하는 김 형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틀림없이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였다.
"동네에 자전거를 조립하는 곳이 있는 걸 얼마 전에 알았어요." 김 형은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낸다. “마침 우리 도환이 자전거가 고장이 났기에 물어보았죠. 조립을 하면 얼마나 하는가 하고. 그랬더니 엄청나게 싼 겁니다. 메이커 있는 자전거 반값도 안 되는 거예요. 물건은 꼭 같이 예쁘고, 오히려 더 튼튼할 것 같은데...”
이젠 결론이 난 것이다. 김 형은 그 사이 몇 주가 미루어지는 동안에, 몇 년 동안 벼뤄 오든 오디오를 장만을 위해 마련한 목돈을 사용해야 할 다른 용도가 생겨버린 것이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서였던가 보다.
갈 곳이 없어진 우리집 CD는 내가 들어야 할까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CD가 이미 있는 것들이다. 자신의 오랜 꿈마저 포기해 버리는 김 형의 지극한 자식사랑이 내 CD가 갈 곳을 잃게 만들고 말았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