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들고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노라니 빨강 우산, 하얀 우산, 그리고 찢어진 우산까지도 들고 있는 일단의 승객들 모습이 실루엣처럼 어울려 보였습니다. 지금은 여름방학 중이기에 조만간 입대할 아들과 여고생인 딸아이 역시도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우산의 어울림 현상을 보노라니 30여년 전, 비오던 날의 어떤 단상이 떠올라서 슬며시 미소가 무지개처럼 피어 올라 저는 흡사 미친놈처럼 혼자 해죽거리며 웃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가난한 가정의 장남이었던 탓에 초등학교의 여름방학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들처럼 물로 산으로 놀러갈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당장의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어느 비 내리는 날에 하루는 생각 끝에 고향인 천안역 앞에 위치한 시장의 우산도매상에 가서 비닐우산 열 개를 떼었습니다. 그 우산을 들고 천안 역전으로 가서 기차에서 내려 역을 나오는 사람들에게 우산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은 불티나게 잘 팔렸고 그래서 잔뜩 고무된 저는 다시 도매상으로 가서 우산 열 개를 더 가져다 팔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떤 헐크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아저씨 하나가 다가오더니만 "누구한테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는 거냐?"며 윽박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형사 앞에 끌려간 죄인의 심정으로 간이 쪼그라든 저는 애걸복걸하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요. "아저씨, 잘 못 했시유. 할머니는 아파 누워계시고 달리 밥 벌어 먹을 방법이 없어서 그만..." 그러자 그 아저씨는 잔뜩 노려보던 살쾡이와도 같던 무서운 눈길을 이내 거두곤 금새 양과도 같은 온화한 눈길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인근 상가 상조회의 총무라고 했습니다. 비가 그치자 그 아저씨는 저를 데리고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릴 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랬으니 부디 기 죽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거라"라는 용기까지도 덤으로 함께 주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고마움에 울컥 눈물이 솟구치더라구요. 세상이 무서운 줄로만 알았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역전에서는 본디 너처럼 행상을 하면 이곳의 상인들이 생업차원에서 막는단다. 하지만 도둑질을 하는 것도 아닌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이니만치 내가 굳이 막지는 않으마."라던 그 아저씨는 그후로도 저에게 이런저런 물심양면의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유수처럼 세월이 흘러 이제 저는 40대 중반의 가장이 되었고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모 지체 부자유자 시설에 많지는 않지만 일정액을 납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극심한 경제적 질곡에 빠지느라 이젠 그마저도 못하고 있으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비가 내리면 나는 지난 30여년 전, 불알만 댕그렁거렸던 빈한지경의 저에게 도움을 주셨던 그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그 아저씨도 지금쯤엔 아마도 할아버지가 되어 계시겠지요? 모쪼록 그 아저씨가 늘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빕니다.
아울러 지금 내리는 이 빗줄기에 저의 빈한함과 온갖의 풍상 역시도 죄 씻겨나가고 이제는 풍요와 행복만이 가득 도래했으면 싶습니다. 그리하여 일시중단한, 저보다도 못 한 가난하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로의 봉사 역시도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내리고 있는 이 비에 행복과 웃음과 희망의 빗물만이 함께 섞여서 가득히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된다면 가난과 고통이 싫어서 하루에만 무려 서른 여섯명 씩이나 자살한다는 이 시대의 처참한 아픔 역시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