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했으나, 요즘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혼자서는 어떤 일을 도모하기 어렵고 또 용기도 없으므로 대중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 내지 주장을 펼치려 했음이다. 그럼 왜 하필 모기로 표현 했을까? 그게 궁금하였다.
적당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선거에 빗대어 말하자면, 선거라는 것이 많은 표를 얻어야 되는 일이므로 옳든 옳지 않던 다수결을 따라가는 속성이 있으므로, 때론 옳지 못한것도 옳다고 우기면 옳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전부 너는 나쁘고 나는 옳고 너는 내편이고 나는 너편이고 서로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짝짓기 내지는 울을 쌓는다.
그 울이라는 것이 뭘까? 그 울이라는 것은 외부의 공격으로 부터 방어 하는 방패막이가 된다. 다르게 생각하면 보호막이가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너에게 이렇게 했는데, 넌 왜 내 보호막이가 안 돼주느냐? 하는 불만으로 시끄러운 일도 벌어진다.
사람의 마음이란 움직이는 것이라서 정월 초 하룻날 먹은 마음이 섣달 그믐까지 가기란 쉽지 않는 것이다. 또 주위 환경적인 원인도 있을 것이고 이래 저래 사람 사는 사회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시끌벅적하다.
사람 사는 사회란 마땅히 시끌벅적한 게 정상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게 도를 넘을 정도로 너무 시끄럽다는데 있다. 우리가 가까운 산이나 계곡으로 가보면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다. 그 맑은 소리를 자연의 소리 생명 의 소리라고 표현하지 공해 또는 소음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 고운 소리도 때론 시끄럽다고 들릴 때가 있는 건 인간의 변덕스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해서 옛 성현들은 성품을 다스리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의 성품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 같다.
법 질서 우리는 흔히 법이 최고의 도덕적 기준인 것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고 실지로 다들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법보다 우선인 것은 바로 도덕일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배우는 바른 생활도 바로 도덕이 아니던가?
그러나 현실에서 도덕을 찾으면 과연 초등학교 교실에서 배운 그 도덕이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우리는 그 도덕이라는 것이 너무 자주 팽개쳐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힘이나, 돈에 의해서 도덕이 팽개쳐질 때는 그팽개쳐진 도덕을 누가 주워서 먼지 털고 손질해서 다시 곱게 모실 것인가?
혹시 대학교 교양 과목에 위와 같은 강의를 하는 학교가 있는지? 도덕은 세계화 시대에는 별 소용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요즘 현실에서는 비교적 도덕을 중시하고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소위 말발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옳은 말을 해야될 때 그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전부 듣기 좋은 말만 좋아 한다. 잘못을 지적하기 보담은 모른 척하고 눈감아 버린다. 바로 그런 점이 우리사회를 더 병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귀챃고 시끄러우니까...일종의 비아냥기 섞인 말로 모기도 모이면 천둥 소리를 낸다는 일종의 야유와도 같은 말로 잘못된 것으로부터 비켜간다.
법이란 없으면 없을수록 좋고 도덕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가야 할 가치인 것인데... 그 소중한 가치에 대해 먹고 살기 바빠서 또는 시간이 없어서란 이유로 우린 그동안 외면만 하고 살아온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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