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살고 한번 죽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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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살고 한번 죽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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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의 700년동안의 고독을 읽으며

시몬느 베이유가 쓴 슬픈 소설 <7백 년 동안의 고독>을 언젠가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오래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감동은 소멸해 가는 것들에 대한 시선입니다.

사람은 한번 나고 한번 죽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그 규칙은 인생에 질서를 줍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삶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유한한 시간이기에 가치로운 것이고, 두 번 다시 살수 없기에 성실로 채워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덤덤히 받아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찰나의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그것을 누립니다. 그리고 주어진 선물이 마침내 끝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아름다웠던 꿈을 회상하며 평화로이 떠나갑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한정된 생명만이 있음을 원망스러워 하고, 죽어가는 자신을 바라보고 절망하면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하루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하루를 채워 가느냐가 삶의 의미를 결정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또 멀리 보람을 찾아서 떠나가는 것도 언젠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마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드 보봐르’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색의 소재를 재공 했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마법의 약물을 먹은 뒤, 그는 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싫어합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죽지 않는 사람’이 된 남자는 ‘죽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합니다.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막연히 ‘불사의 꿈’을 꾸어오는 사람들에게 죽지 않는 삶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작가는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프랑스 혁명기에 총을 맞고도 살아남아서, 그는 세상이 변하여 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이 늙어가고 마침내 죽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자라고 어른이 되고 늙어가고 죽어갑니다. 그는 오랜 시간 후 자신의 후손들 중 한사람과 다시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규정하는 법칙에 따라 새로운 사랑도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너무 많은 세월을 살았고, 세상은 이제 흥미롭기 보다는 지루해집니다. 정이 들면 이별하고, 사랑하면 떠나가는 것들이 그는 싫어지게 됩니다.

깊은 숲 속에 들어가 그는 긴 잠을 잡니다. 그리고 백년이 넘는 긴 잠에서 깨어났으나 그의 마음은 그동안 변한 새로운 세상을 즐기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쓸쓸함과 새로운 만남과 떠나보내기를 반복하기 두려워하는 아픈 마음만이 남아있습니다.

또 다른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는 죽음에 대한 강박적 공포에 시달립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또 다시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갈증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숙명에 대한 반항이 가득합니다.

그녀는 그 사나이의 비밀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갑니다. 사랑하자고. 그래서 그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그 사나이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고 싶노라고...

그렇게 시몬느 보봐르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색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것입니다. 죽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나이의 고통은 무엇이며, 죽음을 증오하고 기억으로나마 영원한 삶을 누리려는 여자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두 인물 중 누구에게 더 마음이 기울든 간에, 그 약물을 먹지 못한 우리들 모두에게는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법칙에 따라 우리를 규정하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두려운 것을 생각하기 힘들어서 일까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도 피곤해서 일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죽음이 아직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나는 죽음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느낍니다. 거의 날마다 죽음을 대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내 시계는 끊임없이 또각 거리면서 동일한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나를 인도해갑니다. 오랜 시간 죽음을 대면하면서 나는 이제 죽음과 많이 친하여 졌습니다. 나의 손님이자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이 나에게 허락해준 시간동안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좀 더 많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빨리, 때로는 느릿하게 삶의 결을 느끼고, 삶의 질감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석양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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