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로가 "한가함을 깬다"는 뜻으로 쓴 수필집에서
나는 내 선대의 뿌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상x처럼 들리겠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옛 선비의 사고思考로 생각해보면 무식한 상x 중에 하나이고, 지금 세태에 비추어서 보면, 가문에 대해서 조금 무관심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또한 내가 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굳이 족보 따위를 따지고 살만큼, 여유와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내가 뿌리를 따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수필이라는 이론서를 몇 권 쓰면서, 여러 권의 수필 관련 책을 읽다가, 이인로가 쓴<파한집破閑集>을 접하게 되었고, 조趙씨의 뿌리를 알게 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이인로는 고려 명종 때 인물로서 ‘한가함을 깬다.’는 뜻으로 쓴, <파한집>은 넓은 의미의 수필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83편이다. 순수 시평론이 41편이고, 나머지는 수필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집이라고 일컫고, 시효詩嚆의 효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그 사료성도 높이 평가된다. 그 뒤를 이어서 이를 보충한다는 글로,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이 나왔다.
접어 두고서 <파한집>을 접하다가, 아래 시화詩話를 읽게 되었고, 조趙씨의 중국 본관이 천수天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 시화를 아래에 적는다.
객客을 기다렸으나 객은 오지 아니하고
승僧을 찾았으나 승도 또한 없도다.
다만 수풀 밖에 새가
관곡款曲하게 제호堤壺함을 권하네.
천수天水 역락亦樂이 양주梁州 원으로 부임하려 할 때, 내가 자진과 더불어 천수사天壽士 문에서, 그를 전송하고자 하였으나, 영락이 우인이 만류한바 되어, 대낮이 되어도 도착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한 승사를 찾으니 적적하여 사람이 없다. 내가 우연히 담묵으로 문짝에 위 시를 썼다.
그 뒤 20여 년 만에 자진의 집에서 한 중을 보니, 도모道貌가 범상치 않은데, 나에게 읍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아름다운 시편을 보여 주시었으므로 이렇게 사례를 합니다" 하였다. 내가 망연히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중이 이 시를 외며 말하기를, "제가 이 당시의 사원의 주승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서로 더불어 크게 웃고 드디어 시집에 기재하였다.
위의 글은 파한집에 있는 시화詩話다. 이 글 중에 천수天水는 중국 조趙씨의 본관이고, 역락亦樂은 조통趙通의 자이다. 조통은 한림학사에 이른 사람이고, 양주梁州는 지금의 양산군이다.
이 시화로 보면 조趙씨의 뿌리가 천수天水라고 짐작되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뿌리를 남의 말 하듯이 묻고 있는 것을 보아도,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하지만 선친은 늘 풍양 조씨가 양반이라고 말해서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굳이 족보를 따지지 않고 살았는데, 내 성씨와 이름이 갑자기 좋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선각자인 이인로를 흉내 내고 싶고, 수필을 쓰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의 좋은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상x처럼 들리겠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옛 선비의 사고思考로 생각해보면 무식한 상x 중에 하나이고, 지금 세태에 비추어서 보면, 가문에 대해서 조금 무관심한 사람 중에 하나이다.
또한 내가 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데, 굳이 족보 따위를 따지고 살만큼, 여유와 권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내가 뿌리를 따져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글쓰기와 관련이 있다.
수필이라는 이론서를 몇 권 쓰면서, 여러 권의 수필 관련 책을 읽다가, 이인로가 쓴<파한집破閑集>을 접하게 되었고, 조趙씨의 뿌리를 알게 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이인로는 고려 명종 때 인물로서 ‘한가함을 깬다.’는 뜻으로 쓴, <파한집>은 넓은 의미의 수필집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83편이다. 순수 시평론이 41편이고, 나머지는 수필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집이라고 일컫고, 시효詩嚆의 효시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그 사료성도 높이 평가된다. 그 뒤를 이어서 이를 보충한다는 글로,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이 나왔다.
접어 두고서 <파한집>을 접하다가, 아래 시화詩話를 읽게 되었고, 조趙씨의 중국 본관이 천수天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 시화를 아래에 적는다.
객客을 기다렸으나 객은 오지 아니하고
승僧을 찾았으나 승도 또한 없도다.
다만 수풀 밖에 새가
관곡款曲하게 제호堤壺함을 권하네.
천수天水 역락亦樂이 양주梁州 원으로 부임하려 할 때, 내가 자진과 더불어 천수사天壽士 문에서, 그를 전송하고자 하였으나, 영락이 우인이 만류한바 되어, 대낮이 되어도 도착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 한 승사를 찾으니 적적하여 사람이 없다. 내가 우연히 담묵으로 문짝에 위 시를 썼다.
그 뒤 20여 년 만에 자진의 집에서 한 중을 보니, 도모道貌가 범상치 않은데, 나에게 읍하여 말하기를, "일찍이 아름다운 시편을 보여 주시었으므로 이렇게 사례를 합니다" 하였다. 내가 망연히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중이 이 시를 외며 말하기를, "제가 이 당시의 사원의 주승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서로 더불어 크게 웃고 드디어 시집에 기재하였다.
위의 글은 파한집에 있는 시화詩話다. 이 글 중에 천수天水는 중국 조趙씨의 본관이고, 역락亦樂은 조통趙通의 자이다. 조통은 한림학사에 이른 사람이고, 양주梁州는 지금의 양산군이다.
이 시화로 보면 조趙씨의 뿌리가 천수天水라고 짐작되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의 뿌리를 남의 말 하듯이 묻고 있는 것을 보아도,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하지만 선친은 늘 풍양 조씨가 양반이라고 말해서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굳이 족보를 따지지 않고 살았는데, 내 성씨와 이름이 갑자기 좋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내가 선각자인 이인로를 흉내 내고 싶고, 수필을 쓰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편의 좋은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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