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현판' 원형 복원 후 제자리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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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현판' 원형 복원 후 제자리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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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지덕사 숭례문현판 탁본자료 진본 확인

^^^▲ 좌) 지덕사소장 탁본자료, 우) 앞판(앞면) 38조각^^^
문화재청은 숭례문 화재로 일부 훼손된 현판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숭례문 복구공사가 완료된 후 제자리에 걸기로 했다.

숭례문 복구자문단은 최근 고증 및 기술분과 합동회의를 개최해 지덕사 탁본 등 옛 자료와 현재의 현판을 비교·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숭례문현판 처리방안을 논의한 결과,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숭례문 현판은 보존처리작업을 위해 해체 분석한 결과, 앞판과 뒤판이 수십 개의 조각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이는 원래 한 부재였던 앞판이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 등으로 부분 훼손돼 결손 부위를 나무판으로 땜질식 수리를 하면서 지금과 같이 38조각으로 맞춰 보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뒷면의 보강 덧판은 앞판을 고정하고 보강하기 위해 15조각의 판재를 가로로 잇대어 붙여놓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현판 탁본자료를 대여받아 현재의 현판 글자와 비교·분석한 결과, 지덕사의 탁본에는 글자는 물론 현판의 나뭇결까지 동일하게 찍혀 있어 진본이였으며, 당시 숭례문 현판글씨의 원형을 확인 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임을 확인했다.

또한 글자 형태를 비교한 결과, 한국전쟁 시 훼손돼 보수된 부분 이외의 글자는 탁본과 동일하며, 탁본과 일제 때 유리건판사진의 글자가 같은 것으로 조사돼 현재의 현판은 한국전쟁 이후에 보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글자형태는 ‘崇’자와 ‘禮’자에서 개별 획 삐침의 형태, 폭, 연결 등에서 일부 변형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덕사(서울 동작구소재 유형문화재 제11호)는 양녕대군(1394~1462)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지덕사 관계자들은 현판탁본을 양녕대군의 후손인 이승보(1814~1881)가 고종 2년(1865) 경복궁복원 영건도감 제조 재직 시 확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1814~1888년)의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년)』에서도 이승보가 숭례문 현판 개색(改色)을 직접 확인했다는 기록이 있어 1865년에서 1871년 사이에 탁본이 이루어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숭례문 현판은 지덕사의 탁본자료를 근거로 더 많은 고증자료를 확보해 원래의 모습대로 수리할 예정이며,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과 서예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완벽한 수리로 원래의 자리에 현액(懸額)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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