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바빴으나 뜻 깊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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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바빴으나 뜻 깊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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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圭大祭’와 ‘鷄龍山中嶽壇’ 그리고 ‘五體投地순례단’

 
   
  ^^^▲ 중악단 내부모습, 계룡산 산신령이 중앙에 모셔져 있다. 많은 이들이 기도드리고 있다.
ⓒ 송인웅^^^
 
 

갑자기 “신원사에서 단풍사진이나 찍자”는 말에 함께한 토요일 날에 대박 났다.

무슨 노름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게 아니라 하루에 3건의 기사를 쓸 ‘꺼리’를 건졌다는 뜻이다. 숨 가쁘게 바빴으나 뜻 깊었던 하루였다.

그래서 오늘 쓰는 ‘사는 이야기’는 세 건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오래전부터 신원사 산신각인 中嶽壇을 세밀하게 관찰하고픈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전날인 24일 “신원사 간다”는 말에 “나도 간다”며 약속을 덜컥했다.

 

 
   
  ^^^▲ 순국416주년 영규대사 추모재를 알리는 현수막
ⓒ 송인웅^^^
 
 

그리고 나선 단풍사진 촬영길에 “우선 갑사부터 들리자”는 제안에 갑사로 들어섰다.

중간 중간 다른 때와는 달리 전경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고 높은 분들의 출동이 있구나”짐작했다.

짐작대로 갑사입구에 다다르니 “창건 1588 개산재제, 순국416주년 영규대사 추모재, 제8회 산중 음악회”가 열린다는 프랑카드가 걸려 있었고 관광버스 등 많은 차들과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제(靈圭大祭)’에서 점심공양을 받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이 있다. 이왕 갑사에 온 것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8시부터 시작된 ‘개산대제’는 이미 끝 난 상태고 ‘영규대사추모재’가 거행되고 있었다.

 

 
   
  ^^^▲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 순국 416주기 추모재^^^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제(靈圭大祭)’는 갑사(www.gapsa.org)와 국방부, 3軍 군승단이 공동주최하며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 순국 416주기 추모재’ 행사는 위패봉안과 화엄시식, 추모사,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부대행사로 산사음악회, 시화전시회 등이 마련됐다.

영규(靈圭 ?∼1592)대사는 호는 기허(騎虛), 본관은 밀양(密陽)박씨, 공주(公州)판티 지금의 월암리에서 출생, 계룡산 갑사(甲寺)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休靜)의 제자가 되었다.

영규대사는 갑사 청련암에서 무상보리를 증득하시고 제자들에게 불법과 함께 무예도 가르치셨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선조임금이 피신하는 나라의 위기가 닥치자 승장이 되어 의승(義僧) 수백 명을 규합하여 관군과 함께 청주성(淸州城)의 왜적을 물리쳤다.

1592년(선조25년)8월초 청주성을 수복하였고, 의병장 조헌(趙患)이 전라도로 향하는 고바야카와 다카가게(小早川隆景)의 일본군을 공격하고자 할 때 함께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리하여 조헌이 이끄는 의사와 영규가 거느린 승군은 92년 8월 18일 전투에서 일본군의 호남침공을 저지하였고, 이때 영규대사가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을 모은 것은 영규대사가 최초이며 전국에서 승병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원
ⓒ 송인웅^^^
 
 

선조임금은 청주성 탈환의 공을 인정하여 영규대사에게 정3품당상관과 금단의를 하사하고 진위장군 시호를 내렸으며 입적 후에는 종2품 당상관과 중추부사의 직위를 내렸다.

이러한 영규대사의 업적을 이유로 국방부, 3軍 군승단이 영규대사와 800여 의승군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호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추모재를 주관하고 있다는 것.

 

 
   
  ^^^▲ 신원사 대웅전 전경
ⓒ 송인웅^^^
 
 

다들 아시겠지만 산사에서 행사가 있으면 때맞추어 공양이 있게 마련이고 마침 그곳에서는 점심공양이 있어 산채비빔밥과 함께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는 당초 목적지인 신원사로 향했다.

산신신앙의 맥을 잇는 중악단을 찾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鷄龍面) 양화리(陽化里)에 위치하는 신원사(新元寺)는 사찰의 풍세보다는 국조신을 모시며 산신제를 지내온 중악단(中嶽壇)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중악단은 계룡산 천황봉 서남쪽 아래 계곡에 자리 잡은 신원사 경내 동편에 있으며, 조선초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이성계의 명에 의해 1394년(태조3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 신원사 중악단외부 모습, 명당인지는 누군가의 판단이 필요할 듯
ⓒ 송인웅^^^
 
 

山神은 원래 山河大地의 국토를 수호하는 신으로 산신재는 민족정기의 고양과 모든 백성의 합일 및 번영을 기원한다.

묘향산 산신각을 상악단, 지리산 산신각을 하악단, 그리고 그 중간에 위치한 계룡산 산신각이 중악단인데 바로 신원사의 산신각이 중악단인 것.

중악단은 1651년(효종2년)에 철거되었다가 1879년(고종16년)에 명성왕후의 명에 의해 재건립됐다. 궁궐양식을 그대로 축소하여 만들었으며 건물의 안에는 신신도가 모셔져 있다.

묘향산의 상악단과 지리산의 하악단은 멸실되었으나 중악단을 보물 제1293호로 1999년지정 보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 신원사 중악단^^^  
 

계룡산 중악단과 신원사 뒤편의 계룡단터와 금강변인 곰나루 웅진단터는 조선시대 유가식 산신제와 수신제를 지내던 제단으로 매년 계룡산 산신제가 고스란히 재현된다.

일제에 의해 맥이 끊긴 계룡산 산신제는 민속학자들의 고증으로 100여년 만에 복원돼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무(巫), 불(佛), 유(儒) 다종교 공존의 축제인 ‘계룡산 산신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민족 정서를 지배했던 유교, 불교, 무교 3대 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면서 계룡산 산신제를 이끌어온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계룡산 산신제’를 취재 독자들에게 선보일 생각이다.

한마디로 중악단은 계룡산 산신을 모시던 제단(祭壇)으로 산신각 중 전국 최대의 규모라 할 수 있다.

태조는 1394년(태조 3년) 북쪽 묘향산의 상악, 남쪽 지리산의 하악과 함께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3악(岳)의 하나인 계룡산의 신원사 경내에 계룡단(鷄龍壇)이라는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 오체투지(五體投地)순례단이 순례52일째임을 알리고 있다.
ⓒ 송인웅^^^
 
 

예로부터 영험하고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온 계룡산에 산을 거룩하게 여기고 숭배해온 산신신앙의 맥을 잇는 중악단이 있으니 계룡산 주위에 굿당이 많음은 당연지사일터다.

중악단의 이곳 저것을 둘러보고 계곡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준비해간 도시락과 신원사 입구에서 사간 막걸리를 단숨에 해치웠다. 좋은 풍경과 맑은 공기는 그냥 모든 것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했다.

우연히 ‘오체투지순례단’을 만나

그리고 대전으로 향하는 길을 온 방향과는 다르게 연무삼거리 방향으로 틀었다. 논산시 상월면 주내4거리를 지날 때 오체투지(五體投地)순례단을 만났다.

항상 한번은 취재하고 싶었던 “어떻게 행하는지” 보고픈 행렬을 만난 것이다. 이럴 때 기자는 “심봤다”고 외친다.

 

 
   
  ^^^▲ 무엇이 이들을 오체투지(五體投地)하게 했을까?^^^  
 

‘五體投地’란 불교 신자가 삼보(三寶)께 올리는 큰절로 자기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佛,法,僧 삼보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으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게 절하는 방법을 말한다.

 

 
   
  ^^^▲ 오체투지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 송인웅^^^
 
 

절을 하는 방법은, 먼저 합장한 자세로 두 무릎을 꿇고 합장을 풀어 오른손으로 땅을 짚은 후 왼손과 이마를 같이 땅에 댄다. 그리고 두 손을 뒤집어 손바닥으로 공손히 부처를 받드는 동작을 한다.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땅에 댈 때는 양쪽 발을 펴서 발등이 땅에 닿도록 하며, 이때 왼쪽 발등을 오른발 발바닥 위로 얹어 X자 형을 만든다.

왼손과 이마를 땅에 댈 때는 양손이 양 무릎 앞에 놓이게 하고 그 가운데 이마를 놓으며, 두 발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몸의 뒷부분이 올라가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두 무릎 사이는 한 뼘이 넘지 않도록 한다. 자세가 완전히 갖추어진 다음에 두 손을 손바닥이 위로 향하도록 젖혀서 부처의 발을 받드는 모양을 하는데, 이때는 공손하고 경건하게 하여 마치 복을 달라고 구걸하는 자세처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젖힌 두 손바닥은 귀 높이까지 약간 들어올린다. 이때도 부처의 발을 들어 올린다고 생각하여 펴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하며, 손 모양이 흩어지거나 양손이 엇갈려서는 안 된다.

 

 
   
  ^^^▲ 오체투지의 행렬이 사거리를 벗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와 세상에서 가장 늦은 걸음으로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지난 9월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한 오체투지 순례가 26일 신원사 중악단에서의 1차년도 회향식을 하고자 하는 길에 우연히 부닥친 것이다.

왜 두 분이 어렵고 힘든 오체투지 순례를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두 분만이 알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전하는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오체투지순례단’이란 카페(http://cafe.daum.net/dhcpxnwl)가 있다.

정성스레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려 몸을 내려놓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간절한 염원으로 기도하는 종교도 다른 그들이 진정 구하는 게 무엇일까?

곰곰이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이 된 듯하다. 오늘 하루는 뜻 깊은 하루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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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2008-10-28 09:46:45
잘봤쓔^^

길위에서 2009-01-07 03:26:49
교통방해로 딱지떼는거 아닌감. 그런데 왜 보고만 있을까. 이러니 나라꼴이 안되는거입니다. 경찰이 뭐 하는겁니까. 이렇게 공신력이 무너지는 사회는 곧 국회로 이어지는거 맞지요. 맞고 말고요. 허허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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