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서. 혹은 구질구질해서. 또는 나 혼자만 고이 간직하고 싶어서. 때로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도 그저 건성으로 받아넘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당할 것 같아서. 아니면 그가 열심히 들어주어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때문에 내 마음에 난 조그만 상처구멍이 더 커질 것 같아서. 그래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살아들 가는가 보다.
내 친구 한 사람은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기는 햇님에게 인사를 한다고.
아침 출근을 하면서 “아 햇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하고, 낮의 무료한 시간에 창가를 내다보며 “햇님. 나도 이리 더운데 당신은 얼마나 더울까! 대충 그만 좀 하고 쉬 시죠”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단다. 저녁 퇴근할 무렵엔 또 다시 해를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고 한다. “안녕. 내일 다시 봅시다.”
듣고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다. 근데 친구는 살짝 목소리를 낮추어 진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건 비밀인데...” 라고 하면서. 그래서 나는 친구가 나에게 알려준 이 비밀을 이렇게 공개해도 되는 것인지 조금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이 글은 그 친구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는 내용이고, 또 전혀 나쁜 내용이 아니니까 그 비밀을 밝혀도 될 것 같다. 아마 그 친구도 나에게 잘했다고 말을 하지는 않아도, 마음속으론 ‘참 잘했군’ 하고 생각할 것이다.
친구의 비밀이란 생각보다는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친구는 자신에게 있어서 햇빛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하루의 시작과 끝에 단순히 습관처럼 해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햇빛에 대해 일종의 우정을 느끼고 있단다. 오랫동안 햇빛과 밀어를 속삭이면서 쌓게 된 신뢰와 공감 같은 거란다. 그의 이야기를 죽 듣고 있다보면 친구가 불우한 편은 아니더라도, 조금 힘들고 고된 학창시절을 보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구태여 가난이니 힘든 삶이니 그런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나름대로의 고민과 번민들을 앉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는 젊은 시절에 느끼던 감정들, 또 기쁨과 슬픔을 햇빛과 더불어 나누었다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해를 친구삼아 푸념하면서 용기를 얻고, 짜증이 나면 또 친구삼아 해에게 투덜투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친구의 재치와 감성이 새삼 느껴졌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요즘도 그렇게 해와 사귀니?” 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데 요즘은 좀 바쁘기도 하고, 스모그 때문에 해를 볼 수 없는 날이 많아서 예전처럼 사귀기가 쉽지가 않단다. 그러면서 “내가 해를 볼 수가 없다고 해도, 그 스모그나 구름 뒤에는 항상 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난 항상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그는 ‘햇님’이 자신의 친구이자 ‘백’이기도 하단다.
어려서부터 늘 대화하고 사귀어 와서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햇빛이, 내가 볼 수 있던 없던 항상 저 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힘든 일이 있어도 외롭지 않아서 좋고, 또 마음속으로 막강한 ‘햇님’이 자신의 ‘백’이라고 생각을 하면 힘든 일에 닥쳐도 어디선가 새로운 용기가 솟아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진짜 비밀인 ‘햇빛 세레모니’를 털어놓는다. 면접을 보거나 시험을 치는 등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혹은 기분이 너무 좋거나 너무 우울할 때는 그는 ‘햇빛 세레모니’를 하곤 한단다. 잠간동안 빠른 동작으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 두개를 붙여서 오른쪽 이마에 대고 경례 비슷한 동작을 햇빛에다 하는 것이 바로 ‘햇빛 세레모니’란다. 그것이 자신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는 햇빛에 대한 그의 애정표현이란다.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보더라도 손으로 햇빛을 가리거나, 머리를 만지는 정도로 생각하지 그런 심오한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없으니 불편할 것이 없다는 것도 그만의 ‘햇빛 세레모니’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햇빛에게 인사를 하고 나면 그는 한결 마음이 가볍고 든든한 것을 느낄 수 있단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참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아직도 그렇게 한점 티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나에게 그 말을 해준 그 친구 외에도 겉으론 강한 척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한없이 부드럽고 약한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부턴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들을 잘 살펴보아야겠다. 혹시 햇빛을 향해 이상한 암호 같은 것을 보내는 수상한 사람이 또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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