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15일 제1 연평해전은 우리 군은 한명의 사망도 없 북한 군함 2척 침몰, 5척 파손, 북한군 20명 이상 사망이라는 대승을 거뒀다.
1년 뒤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은 북한으로 가서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고, 대패했던 북한군은 3년 뒤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우리나라와 터키의 3.4위전이 있던 날, 오전 10시경 북한의 경비정 2척이 연평도 인근 해상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해전이 발생했다. 30분간의 해전 끝에 북한 해군 경비정은 조타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돼 북한 경비정의 예인을 받아 퇴각했는데, 당시 북한군의 피해는 사망 13명, 부상 25명 등 38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리 군의 피해도 컸다. 북한의 기습 선제 포격으로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예인 도중에 침몰됐고, 정장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까지 6명의 해군 승조원이 전사하고 19명의 전상자가 발생했다.
우리 군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화해분위기 조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제1 연평해전 이후 새로운 4대 교전수칙을 군에 하달했다.
“첫째,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둘째, 우리가 먼저 발사하지 말라. 셋째,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라.” 이 중 핵심은 NLL을 상습적으로 침범하는 북한군의 함정에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2연평해전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서해교전’으로 부르며 그 의미가 축소됐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에야 승전의 의미를 담아 '제2연평해전'으로 바로잡아 불리게 됐다. 2022년 윤석열 정부로 바뀐 후에야 연평해전 20주년을 맞아 승전으로 규정되어 국가급 행사로 격상됐다.
해전 이튿날 6월 30일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은 전사자 문병 없이 일본 요코하마로 월드컵 축구 독일과 브라질의 결승전 관람을 위해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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