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가 개발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영국의 수상 처칠이 2차대전 중 폐렴으로 죽을 뻔 하다가, 당시 막 개발된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여러 가지 항생제가 연달아 개발되면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균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50년 남짓한 세월 만에 인류가 개발한 어떤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항생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이 그렇듯이 박테리아의 유전자도 항상 일정한 비율로 돌연변이가 나타납니다. 이 돌연변이들 중에는 항생제가 박테리아를 죽이는 기전(이게 박테이아에게는 급소가 되겠지요)을 가지는 것이 우연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때 아무리 잘 듣던 항생제라고 해도 언젠가는 내성균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따른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약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약제 내성 돌연변이를 획득한 균이 전체 세균들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균의 돌연변이는 일정한 비율로 일어나기 때문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확률적으로 일정한 수의 세균이 항생제에 대해 저항성(내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내성 유전자를 가진 세균은 여전히 일정한 비율에 그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적인 확률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약을 사용하는 관습이라는 인위적인 선택이 가해진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어떤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균이나, 내성을 가지지 않은 균이나 세균들 사이에서의 우열의 차이는 없습니다.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건강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우연히 밥을 만드는 쌀 공장에 인간에게 나쁜 독성물질이 함유되었다고 한다면, 밥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전에 세균들에게도 작용합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세균이 몸에 들어왔을 때, 그 균 중에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지 않은 균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 일정한 비율로 내성을 가진 균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에게 항생제를 투여한다면, 선택적으로 내성이 없는 균이 먼저 죽을 것이고, 약을 끊은 뒤에 내성을 가진 균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 뒤로는 그 전보다 내성균이 비 내성균 보다 더 큰 우위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자연 상태에서는 비 내성균보다 아무런 우월성이 없는 내성균이 급격히 비 내성균 보다 우월하게 됩니다. 항생제 남용이니, 오용이나 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항생제를 꼭 필요할 때 사용하든, 꼭 필요하지 않을 때 사용하든 항생제의 사용빈도가 늘어날수록 내성균의 상대적 비율은 증가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꼭 필요할 때는 항생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항생제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내성균의 비율도 늘어납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항생제 내성율이 현저하게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의료소비 문화에 일정부분의 책임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감기는 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휴식하고, 잘 먹으면서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증상이나, 합병증의 방지를 위한 약을 복용하면서 우리 몸의 면역기전이 감염을 이겨내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감기는 쉬어라고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빨리 낫게 해주세요.” 하고 요구를 한다면 의사는 혹시 같이 있을지 모를 박테리아 감염을 빨리 가라앉히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게 됩니다.
의사도 사람이니까요! 빨리 낫기를 재촉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약해져서 아무래도 약 한 가지라도 더 처방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 피해는 언젠가는 우리들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patients. be patient
환자들이여. 인내심을 가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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