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공부하러 가는 건지, 일하러 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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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창시절>공부하러 가는 건지, 일하러 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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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이 시작될 무렵의 고등학교 시절

지금으로 부터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우리들의 학창시절에는 오후 시간에는 늘 양동이나 세수대를 가지고 일하러 가야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오후 시간에는, 영농철에는 논에 피뽑으러 가야되고, 그 다음에는 학교 주변 가꾸는 일을 학생들이 맡아서 해야 했으므로 좀 날날이인 나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여름철에는 학교 뒤산으로 퇴비하러 가야 하므로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할 것 없이(남,여공학이었음) 낫을 가지고 학교로 가야 했다. 언젠가는 낫질을 잘못하는 관계로 나무나 풀을 그냥 툭툭 치다가, 옆에서 보던 친구가 그렇게 하면 안되고 한쪽 손으로 잡고 해야 된다고 해서 풀을 잡고 툭- 치다가 그만 나의 왼손을 찍고 말았다(아직까지 왼손등위에 흉터가 있다).

피가 솟구치니 어리석은 마음에 죽는 건 아닌가 해서 큰소리로 울었다. 그러니 와- 하고 학생들이 모여 들었고, 그때 형부가 우리학교 선생님인 관계로 우리 담임은 한층 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일단 양호실에 가서 약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 덕분에 그날 오후는 아주 오랜만에 나에게 완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가 주어지니 갑자기 심심해져서 창밖의 풍경을 보니 모두들 퇴비해서 학교 퇴비장에서 각자 한 것을 선생님에게 검사받는다고 줄을 길게 늘어서 있기도 하고, 검사 받는 학생들은 합격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아주 즐거워 했다.

그날 오후 시간은 내게 있어서 아주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그후 우리(친구 3명)는 아예 작당을 해서 오후 작업시간이면 아프다고 양호실에 가서 드러눕곤 했다. 시끄럽던 교실이 전부들 나가고 학교 전체가 아주 조용해지면, 양호실은 우리들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그동안 밀렸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 꿈같이 달콤한 시간은 그러나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에게 걸리고 말았다. 세 명 다 교장실 앞에 손들고 꿇어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때 2학년이었으므로 1학년한테는 챙피스럽고 3학년에게는 잘하는 짓이다 하고 면박을 받고, 제발 교장선생님이 빨리 와서 벌을 그만 두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은 도무지 올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셋이서 또 꾀를 냈다. 발이 저리니 한사람씩 교대로 망을 보고 그동안 다른 사람은 편히 쉬자고. 한 사람씩 교대로 망을 보던 중 교무실에서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셋 모두 그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는다고 교무실 유리창 문앞에 귀를 바짝대고 듣고 있던 차에 그 모습을 다시 교장선생님에게 걸리고 말았다.

요놈들 봐라 하시면서 이젠 교장실 안에다가 벌을 세우는데, 교장선생님은 나가지도 않고 담임선생님이 결재받으로 오셨다가 보시고 눈을 도끼눈 해서 너희들 셋다 교무실로 와 하시는 것이다(그날은 교장실, 교무실 오가며 벌 받는구나. 서로 네탓이야, 내탓이야 하면서 셋 다 풀이 푹 죽었다).

하루종일 벌 받다가 학교 끝나겠구나, 발은 저려와서 연신 콧등에 침을 발라보지만 너무 저려서 감각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교장 선생님께서 한 친구에게 자네 이름이 뭔가? 하고 물었다.

김 아무개라고 대답하니 본관은 어딘고? 해서 김해 김씨인데요. 그러자 야- 이놈아 자기 성을 높이는 인간이 어디 있노? 하면서 벼락같이 고함을 치시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어리둥절 했다. 분명히 또박 또박 김해 김씨라고 말씀드렸고 다른 틀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교장선생님 보기에도 그 친구가 상당히 억울해 하는 것이 보였던지 셋 다 일어나서 책상 가까이 오라고 하시면서 어디 가서 누가 묻거든 자기 성을 높이지 말고 "제성은 김해 김가 입니다" 하고 대답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제 그만 나가도 좋다는 말씀에 나오면서 그날 그 시간부터 교장선생님 별명을 지었다. '염소'라고. 마침 성함도 염우섭 교장선생님이었으니, 염소가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 선생님 일본 와세다에서 공부하신 분인데, 키가 다섯 자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작았고 '에- 또' 하고 늘 말씀 서두에 붙임으로서 일본 군관같은 분위기였다. 항상 회초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손을 내보이라고 하신다. 앞으로, 뒤로 하고 손을 요리조리 보시고 촌에 농사짓는 학생들에게는 참 고생 많이 한다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 것같은 우리들은 교장선생님 단골 꿀밤의 대상이었다.

너무도 얄미워 3년 내내 저 염소 다른 데로 전근도 안가나? 하면서 속으로 얼마나 바랬지만, 결국 3년 내내 이런 트집 저런 트집 잡혀서 때론 정말로 잘못해서 교장실에서 벌 서고 때론 오후 노역이 힘들어 보여서 좀 쉬라는 의미에서 교장실에서 벌 주고.

그땐 왜 그렇게 교장 선생님이 미웠는지, 저쪽에서 오시면 벌써 염소 온다고 전부들 도망 가곤 했다. 우리 셋은 특히나 미운 털이 밖혀서 잘도 걸렸다. 그런 교장 선생님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부지런하고 교양있는 사람, 건전한 사회인이 되어 주라는 선생님 나름의 교육방법이셨을 것같다.

농촌지역이라 가끔씩 그 교장선생님 생각이 난다. 그것도 손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일 안했다 싶으면 손바닥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오늘 당장 가서 부모님 도와 드리라고 다짐까지 받던 교장선생님. 지금 와서 보면, 그것이 산 교육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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