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 모진 목숨 놓으면 안됩니더”
스크롤 이동 상태바
“어무이, 모진 목숨 놓으면 안됩니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직도 노모 앞에서는 자신은 어린애라며 ‘어무이’라고 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보는 위조씨

^^^▲ 박위조(68)씨.20년째 누워 꼼짝 못하는 노모를 30리 먼 장을 봐가며 고기 한점 더 입에 넣어 드리며 봉양해 올해 제46회 보화상(효행부문)을 수상
ⓒ 배철현^^^
용성면 가척리. 해발 400미터에 위치한 마을로 지역에서 가장 오지라 불린다. 마을의 재실 뒤로 여린 바람에도 주저 앉을 것 같은 나지막한 집이 한 채 있다.

박위조(68)씨, 20년째 누워 꼼짝 못하는 노모를 30리 먼 장을 봐가며 고기 한점 더 입에 넣어 드리며 봉양해 올해 제46회 보화상(효행부문)을 수상했다. 덕분에 시모 윤부돌씨는 102세로 용성면 최고령자로 꼽힌다.

"어무이가 안 계시면 일단 내 몸 하나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남편없이 저 한분을 마음으로 의지해서 살았는데, 돌아가시면 지는 우얍니꺼? "

아직도 노모 앞에서는 자신은 어린애라며 ‘어무이’라고 애정어린 목소리로 불러보는 위조씨.

저 살기 바쁘면 부모도 버린다는 세상을 그 역시 모를 리 없지만, 갖은 고생을 다한 한많은 그녀의 일생을 다 아는 이는 노모밖에 없다는 것.

위조씨가 시집을 왔을 때는 조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때. 남편과 텃밭을 일구며 열심히 살려했지만 남편 역시 쓰러져 저 세상으로 떠나고 병든 노모와 6남매가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땡볕에 논밭일을 마치고 오면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노모는 그녀에게 괴팍함을 보이기도 했다. 괜한 트집으로 밥을 안먹고 돌아눕는 노모를 두고 혼자 밥을 먹기 죄스러워 굶기도 여러번했다는 위조씨. 홧병 하나씩을 가슴에 묻고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그렇게 서로 세월을 의지했다.

6남매를 키우기 위해 뒷산 쓴나물을 캐어 몇달을 죽을 쑤어가며 연명하고, 여자몸으로 등이 다 벗겨지도록 나무를 지어 달랐다.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탓에 자식들은 제 짝도 못찾고 생활비를 보태기는커녕 저 살기바빠 연락이 되지않기도 다반사.

거기다 막내 상원(33·지체장애1급)씨는 어릴 적부터 하반신마비로 지금도 마당 한바퀴를 돌지 못한다. 병원진찰도 제대로 받지못해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서까래가 꺼지는 방 한구석에 아들을 앉혀 놓고만 있었다.

대소변 받아내야하는 노모와 마당 변소도 못가는 아들을 거두느라 위조씨의 몸은 성한 데가 없다. 허리 디스크와 골다공증이 심해 이제 남의 집 품앗이도 못하고, 마음고생 탓에 위장병이 생겨 밤에 혼자 일어나 헛구역질을 하는 날이 많다.

산골에 포도농사가 조금 남아있어 한줄 메는데 허리를 열번은 펴지만 오래된 포도나무가 병을 자주해 작황이 좋지 않다. 이마저 땅이 있다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노모 앞으로 나오는 영세민지원금 20여만원과 장애 아들의 장애인생활지원금 5만원이 이들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인 셈.

위조씨는 "내 죽으면 막내를 누가 거둘지 걱정인데, 관청의 분들이 내 아들 살길을 마련해주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도 못 알아보고 누워만 있는 노모 앞에서는 「이왕 여기까지 같이 살았는데 제발 누워만이라도 있어줘 저승길 외롭지 않게 같이 가면 좋겠다」며 외로운 심정을 기댄다.

외풍이 심해 비닐로 덧댄 쪽마루 앞에 화분 십여점을 나란히 두고 즐거워하는 위조씨. 꽃만보면 마냥 즐겁다는 그녀에게서 고운 천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말한다. "저 꽃 같은 청춘을 이 산골에 묻었심더"라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무원의기도 2003-07-28 12:33:34


주머니속의 비밀 - 어머니~~이







▣ 주머니 속의 비밀 ▣

내가 어릴 적 어머니는 늘 물레를 자으셨다.

어둠침침한 호롱불 밑으로 솜뭉치에서
가늘고 흰 실이 나오는 모습은 무척 신기했다.

겨울날 저녁이면 어머니는 이따금씩
동네 아주머니들과 한집에 모여 물레를 잣기도 하셨는데,
그때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한 서린 노래들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기나긴 엄동설한을 보내고 봄날이 시작되면
어머니는 고구마 몇 뿌리로 배고픔을 이겨내며
들녘에서 두꺼비처럼 엎드려 김을 매고 모를 심었다.


한평생 그런 세월 속에서
우리 여섯 형제를 키워 내신 것이다.


학비를 낼 때가 되면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었겠지만 얼굴엔 그늘 한점 안보이셨다.


철없던 나는 용돈을 타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조르기도 했는데,
그때 어머니는 치마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나를 달래셨다.


그 주머니 속에는 정말 동전 한 푼 없었다.
나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뒤돌아서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 학비를 내는 날이 되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거금 240원(중학교 한 학기 학비)을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엊그제 없던 돈이 어디서 생겼냐고 궁금해 물어 보면
이웃집에서 꾼 돈이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던 어느날
어머니는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모습으로
내게 고백 아닌 고백을 하셨다.


"그때는 너희들이 하도 돈을 달라고
떼를 써서 주머니 속에 또 다른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돈을 감추어 두지 않으면 안되었단다..."


그랬다. 그때 어머니는 주머니 속에 또 하나의 주머니를 만들어
긴요하게 쓸 돈을 감춘 채 다른 빈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우리들을 달래셨던 것이다.


지금 나는 겨우 자식 둘을 키우면서도
끙끙거리는 내 못난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그 속주머니의 지혜를 되새기곤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난한 생활에 여러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면 오죽이나 힘이드셨을까요...

그래서 저런 방법으로 자식들의 철없는 성화를 재우고 하셨나봅니다.

어느글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그분의
어머니는 자식이 아플때나 낙심하고 있을때

"오늘 밤만 자고 나면 괜찮을거다"

하고 다독거려 주셨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에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들은
자식을 키우는데도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것 같습니다.

새삼 이말이 와 닿네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여러분 2003-07-23 20:14:43
이 기사 퍼나릅시다. 사방으로 널리널리 퍼나릅시다

배기자님께 2003-07-23 19:58:40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오늘밤에는 어머니께 잔화라도 해야 할까 봅니다.

엽기다 2003-07-23 18:20:42
허허. 이게 톱뉴스감이냐?

지나가다 2003-07-23 16:36:43
뉴스타운이 한건 했군~ 잘해보시라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