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7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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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71년 대한민국 역사에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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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릉 발굴

^^^▲ 무령왕릉
ⓒ 공주시^^^
백제 왕릉에서 처음으로 지석이 출토되고 총 88종 2천 5백 61점에 달하는 많은 부장품들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발굴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1971년 7월 8일 충남 공주읍 금성동 사적 13호 송산리 고분의 배수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이 무령왕릉은 당시 김원룡 박물관장을 단장으로 하는 문화재관리국 발굴반이 철야작업 끝에 9일 상오 11시 발굴작업을 무사히 마쳤다.

1445년 동안 어둠 속에 잠겼던 이 왕릉에서는 백제의 향기 어린 갖가지 유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발굴된 지석, 부장품

지석= 세로 35.5센티, 가로 41.3센티, 두께 4.8센티로 된 왕과 왕비의 지석은 무령왕릉의 부장품 가운데서도 가장 값진 역사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 지석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고분 주인을 고증할 수 없었던 주변의 송산리 벽화고분까지 상대적인 편년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왕의 지석 전면에는 6행 52자로 왕명과 향수, 붕어 및 안장의 연월일이, 뒷면에는 방위의 표시가 적혀있고 왕비의 지석은 앞면에 4행 41자로 수종, 개장의 연월일을, 뒷면에는 6행 57자로 매지권을 적어 놓았다.

이 가운데는 왕명과 언제 죽었다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왕비 지석 뒷면의 매지권은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사료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매지권을 풀이하자면 “을사년(서기 528년)에 영동 대장군 백제 사마왕(백제 28대 무령왕)이 돈 일만문으로 토왕, 토백, 토부모와 그 밑 모든 토지신에게 서쪽 능지를 사들여 무덤을 삼았으므로 매지권을 만들어 명백히 해두는 바이니 앞으로 어떠한 나라의 율령에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으로 내세의 안택을 비는 신앙에 따라 만들어진 이러한 매지권은 중국에서는 간혹 발견되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부장품= 곡옥 등을 한 묶음씩 계산했는데도 88종 2561점이나 되었다. 금제품 30종, 2200여점의 은제품도 금도금을 한 것이 많았다. 청동제품 13종 24점, 그 밖의 부장품은 환두대도 등 무기류 3존에 5점, 도자기 5종에 9점, 목제품 5종에 5점, 기타 10종에 22점이었다.

발굴된 유물들은 1천 5백년이 지났는데도 이들 유물들은 거의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 큰 특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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