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은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심미적 환상을 필요로 한다"는 은퇴의 말을 남기고 '천상'의 옷으로 갈아 입은 이브 생 로랑 ⓒ AP | ||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1일(현지시각)파리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71세.
크리스찬 디오르에 이어 20세기 후반에 세계 패션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이브 생 로랑은 오랫동안 지병을 않고 오다 숨을 거뒀다고 이브 생 로랑 재단 대변인이 밝혔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1936년8월 1일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프랑스 해운 중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개성이 아주 강한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렸을 때 성격이 매우 온순하고 조용했다. 그는 수영과 패션을 좋아하고 극장에 가는 것을 빼놓곤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브 생 로랑은 17세 나이에 파리로 혈혈단신 입성, 1957년 21세의 나이에 크리스찬 디오르(Christian Dior)의 수석 디자이너로 지명됐고, 1962년 1월 19일 최초로 자신의 ‘컬렉션’을 개최해 그때부터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으며 이후 2002년 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 오면서 세계 패션계의 전설이 됐다.
이브 생 로랑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코코 샤넬 등과 함께 20세기 세계 패션계를 주도한 디자이너들 중 한 명으로 꼽히면서 전통적 엘레강스의 개념을 초월해 대중화 시대에 어울리는 ‘매력’이라는 개념을 의상에 도입한 최초의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1962년 디오르사에서 독립을 한 이브 생 로랑은 자신의 이름을 따 “이브 생 로랑”을 설립,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턱시도(tuxedo Jacket)'를 여성복으로 만들어 내 세상을 놀라게 했고, 1966년 패션계에서 최초로 여성 바지 정장을 도입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1972년 향수와 화장품 회사를 차리고 1974년에는 남성복 분야에도 진출했으며 1981년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83년도에는 메트로폴리탄 아트 뮤지엄 의상 협회(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생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25년 회고전을 개최했고, 85년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수여 받았다.
그는 2002년 1월 현업에서 은퇴를 하며 “나는 오늘 내가 사랑한 디자이너의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또 “모든 사람은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심미적 환상을 필요로 한다.(Today I have chosen to bid farewell to this profession that I've so much loved. It is also to my aesthetic ghosts that I say goodbye. Every man needs aesthetic phantoms in order to exist)”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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