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분을 위한 시원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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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분을 위한 시원한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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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추울수록 좋았습니다.

겨울은 추울수록 좋다. 암. 겨울은 추워야 겨울이다. 기왕에 비가 오려면 우산을 쓰기도 애매한 가랑비보단 장대비가 내리는 것이 좋듯이. 겨울은 추위 속에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 창틈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랫목에 누워 책을 보며 뒹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밖에서 누가 들어오면서 “와 무지하게 춥다”고 외치는 날, 나는 이불에서 몸을 빼내어 창가로 움직여 갔다. 종이 문을 열고 바깥쪽 유리문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추운 날이면 유리창 바깥쪽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곤 했다. 손가락을 유리창에 대면 체온에 성애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게 입김을 유리창에 불어대는 것보단 효과적이었다. 입김을 유리창에 불면 내가 분 입김 때문에 유리창 안쪽에 또 성애가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유리창에 손가락을 대면 금세 시려왔다. 이상하게 찬 유리창에 손가락을 대면 손가락이 뜨거워졌다. 못 참을 만큼 손가락이 뜨거워져 오면 손가락을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손가락을 바꿔가면서 입으로 호호불어서 녹여낸 유리창 한 부분을 통해 바깥세상을 빼꼼이 내다보면 정말 그림같이 추운 겨울의 모습이 펼쳐져 있곤 했다. “와. 진짜 춥겠다.”

그렇게 해서 정말 추운 날이란 판단이 들면, 나는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다. “얘. 추운데 어디 가니!” 하고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깐만 나가따 오께요.”하고 소리치면서 집밖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 전에 집에 들어오던 이가 하던 말을 다시 한번 외친다. “와! 진짜다. 진짜로 춥네.”

그렇게 집밖으로 뛰쳐나간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동네 골목을 쏘다닌다.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것도 아니니, 금세 추위가 온몸으로 파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온몸을 움츠리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나는 기왕에 나서버린 겨울여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바로 그 길이지만, 이렇게 추운 날에는 느낌이 사뭇 색다르다. 마치 처음 보는 새로운 마을에 온 것만 같다. 하얀 성애가 내린 집 앞 길목의 나무는 유난히 더 아름답고 멋져보였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에서 느껴지는 촉감조차도 평소와는 다르다.

“키야- 죽인다. 진짜로 춥다” 나는 그런 추위가 왠지 좋아서 유난히 날씨가 추울 때마다 가끔 이런 식으로 집밖에 쏘다니기를 좋아했다. 추운 날 언덕에 서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세상은 텅 비어있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까만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세상은 조용하기만 하고, 강아지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몸을 웅크리진 않는다. ‘나는 사나이 대장부가 아니었던가.’ 기왕에 나선 길에 오늘은 큰길까지 한번 나가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뛰어가면 금세 갈수 있을 것이다.’ ‘그래 기왕에 나온 것 그곳까지는 갔다 와야지 체면이 서지!’.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긴 했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굽이 높은 방한 슬리퍼를 신고 있는 발까지도 너무 시려온다. 한걸음씩 발을 뗄 때마다 연신 후회를 하면서도 나는 마침내 큰길까지 왔다.

큰길에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새마을 정신...’ 이란 글씨가 씌어진 나무판이 길게 붙어있는 육교위에 올랐다. 길을 따라 찬바람이 몰아쳐 불고,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그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너 여기에 왜 나왔니? 날씨도 추운데”
“그러는 너는?”
“추워서 나왔다 왜?”
“추워서 나왔다고?”

친구는 나처럼 추위에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으면서도, 내말을 듣고는 우습다고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치치도록 웃던 웃음을 그치고 나서, 씩 웃으며 한마디 하는 말.

“사실은 나도 추워서 나왔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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