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급망에서 빠지기도, 중국 내 반도체 산업의 피해 가능성을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
미국 행정부가 우리나라 정부에 반중(反中) 반도체 동맹 성격의 ‘칩4 (미 정부 공식명칭은 fab4)' 참여에 대한 답변을 다음 달까지 요구했다.
우리는 지난 5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때도 미중 사이에 선택의 갈림길에 섰었다.
'칩4'는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주요국인 한국, 일본, 대만 등과 반도체 공급망을 위한 협력 채널을 구축하는 것으로, 중국을 배제하는 뜻이 숨어 있는 것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또다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서울신문에서 보도한 워싱턴 현지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달 말 우리나라 정부에 다음달까지 '칩4' 참여 여부를 확답해달라고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했다.
지난 5월 23일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공식 출범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싱가포르 등 13개국이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국내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일단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IPEF 출범을 환영하고 있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중국이 한국의 IPEF 참여를 트집 잡아 사드(THAAD) 사태 때처럼 경제 보복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해서이다. 중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 연설에서 IPEF 참여 뜻을 밝히자 '디커플링(탈동조화)' 운운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IPEF 출범을 하루 앞둔 22일에는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미국이) 분열을 조장하고 대립을 선동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중국 관영 언론들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라며 비난하는 논평 일색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이 반대해도 IPEF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경제에서 중국 비중이 크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 녹색기술, 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서는 미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발전과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가입해도 당장 의무적 이행 사안이 없어 상징적인 의미만 있고 실제 경제통상 협정은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므로 여유가 있다.
미 국무부와 산업부가 그동안 내세운 '칩4'의 취지는 ‘파트너 국가 간에 반도체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이다. 하지만 '칩4'가 실제 구성될 경우 최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 규제 등 중국을 압박하는 협상물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국은 최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를 만드는 일본 및 네덜란드와 함께 최신 설비의 중국 도입을 막는 공동채널을 비공식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칩4' 참여 땐 중국의 압박 및 보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과 대만이 사실상 참여 의사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우리 정부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의 공급망에서 빠지기도, 중국 내 반도체 산업의 피해 가능성을 무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지난 5월 미 대통령 방한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부터 찾은 것으로 봐서는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 강화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대만·일본과의 협력면에서 우려가 나온다. 대만은 반도체 경쟁자라는 점, 일본은 2019년 우리나라를 상대로 반도체를 포함해 소재·부품·장비에 대해 보복성 수출 규제로 껄끄러운 관계인게 사실이다.
지난 5월 IPEF에 가입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칩4'에 가입한다면 중국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의 절반을 소비하는 거대 시장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현지 공장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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