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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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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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에게도 학벌을 요구하는 사회

개는 날아온 돌을 보고 짖을 줄 알지만, 정작 그 돌을 던진 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한동안 학위논란으로 떠들썩하게 떠들어 대는 꼴이 날아온 돌을 보고 짖어대는 개꼴이더니, 역시나 돌을 던진 이를 가려내지 않고 유행병처럼 지나가는 듯 하다. 먼지가 다소 가라앉은 학위논란 판을 바라보니 역으로 생각해 볼 것이 있었다.

신정아 사건 이후 학위 파장을 거세지게도 했고, 한편으론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는 연극인 윤석화와 사회교육원 강사 정덕희는 고졸 학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대에서 우리를 즐겁게 했던 연극인 윤석화, 행복 전도사라 불리우며 평범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던 사회교육원 강사 정덕희의 능력은 버젓한 학위가 없어도 가능했다.

이쯤해서 고졸의 힘에 대하여 정직한 박수를 보내고, 모든 영역에서 학벌 운운하는 풍조를 반성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사당패, 광대에게도 학벌을 요구했는가. 사당패는 가면을 써야 제맛이다. 사당패는 그들의 놀음에 대가를 지불할 사람을 겨낭해서 연기를 멋드러지게 해내야 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연극인 윤석화는 명문학벌에 환장하는 대중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학위 가면이 필요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최고의 볼거리는 여자같은 남자,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이준기의 연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륜왕 연산군의 관심을 끈 것은 여자로 변신한 예쁜 남자 공길이었다. 사당패가 그들이 선사한 몸짓과 소리에 반해서 대가를 지불할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고관객인 연산군의 구미를 당기기에 경극의 극치인 검보, 즉 얼굴 가면격인 화장술이었다. 이 광대들은 연산군에게 숨어있는 갈망과 연산군의 내면을 지배하는 반란을 읽었다. 그것을 폭발하게 할 수 있게 한 광대들의 센스있는 변신은 그들이 궁궐의 희락원에 거처할 수 있게 되어 호위호식할 수 있었고, 조선 최초의 궁중광대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윤석화가 30여 년 동안 학벌이라면 비상이라도 들이키는 한국 사회에서 연극인으로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은 허위학위라는 가면도 한몫했다. 그러나 알려진 윤석화의 학벌을 압도하는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보지 못한 덤불같은 학벌권위자가 수두룩한 것을 볼 때, 고졸의 노력 앞에 학벌이 무릎을 꿇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학위가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고해성사하는 윤석화를 돌로 칠 수 있을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화여대 출신으로 알았던 윤석화를 연극인 윤석화로만 인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모두 학위 위조 등에 해당하는 공범인 셈이다.

윤석화가 열연한 연극 신의 아그네스, 덕혜옹주, 명성황후 등의 비극적인 리얼리티 연기력은 관객을 속인 죄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더욱 부가되었을 수 있다. 윤석화는 학벌에 눈이 뒤집힌 대중의 바람도 충족시켜주었으며, 연극을 사당패와 차별화시켜 풍격있는 예술로 격상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대중의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던 사당패의 춤과 노래에 학벌과 체면이 필요치 않듯, 연극인에게 학벌을 심각하게 운운할 가치도 없다. 팬들이 즉석에서 던져주는 박수와 찬사로 사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연극인은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어떤 가면이라도 쓸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가장 찬미했던 학벌찬가를 멈출 때가 되었다.

그리고 정덕희라는 세기적인 이야기꾼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정덕희는 사회교육원의 강사이다. 정덕희를 교수라고 칭하는 것 또한 이 시대가 공동으로 지어낸 명칭이다. 어느 대학에서 사회교육원의 강사를 일반 대학의 교수와 같은 처우를 해 주는가?

사회교육원에서 강의하면 교수라고 불러줄 뿐 교수와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안다. 일반대학의 강사도 아니고, 말 그대로 사회의 평생교육이 우선인 사회 교육원의 강사에게 정식 교수의 자질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앵무새죽이기이다.

정덕희의 강의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이다. 옆집 아줌마 같은 구성진 언변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 남편이 아내에게 숨긴 말, 고부지간에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하지 못하는 울화통 터지는 말들을 대신 해주는 위로의 말일 뿐이다.

비음이 섞인 낭낭한 목소리의 정덕희의 이야기 같은 언사 속에 전문적인 이론의 달인인 교수라는 직함으로 책임져야할 명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누가 보아도 정덕희는 이야기꾼이다. 옛날부터 이야기꾼은 말의 귀재였다.

옛날 한 재상이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여서 마침내 이야기로 자기를 속이는 사람에게 자기의 외동딸을 주겠다는 광고를 냈다. 팔도에 이야기꾼들이 모두 와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재상은 이겨냈다. 그런데 한 총각이 찾아와 자신의 선조가 재상에게 돈을 빌려 주었으니 돈을 받으러 왔다고 속였다. 재상은 사실이라고 대답하면 빚을 갚아야하고, '속았다'고 하면 딸을 주어야 하는 곤경에 빠졌다. 결국 그 총각은 재상의 딸과 혼인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야기꾼은 상대방의 약점을 알아야 하고, 일상적인 재치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정덕희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사람과 이 시대의 약점을 알고 재치를 발휘한 데 성공한 이야기꾼일 뿐이다.

윤석화, 정덕희 그리고 예술가의 예술적 성과를 학벌에 비례하여 평가한다면 예술도 학벌도 모두 무너진다. 이쯤해서 고졸의 힘으로 사당패를 연극인으로, 이야기꾼을 사회교육원 교수로 승격시킨 쾌거를 인정해 주는 쪽이 학벌파괴의 물고를 트는 아량이다.

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기왕이면 다홍치마인 학벌에 매료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깊은 반성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광대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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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로브시끼 2008-03-07 01:22:54
동길이가 뭐냐 공길이 아닌가요 ㅋㅋㅋㅋ

선선미 2008-03-07 19:42:10
감사합니다. 스와로브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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