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와 도깨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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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와 도깨비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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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시작되면 으례 납량시리즈가 등장한다. 더위를 식히기에 귀신만한 소재도 없다. 공동묘지에서 출발, 흉가를 거쳐 학교괴담에 이르기까지 산과 호수, 바다는 물론 사람의 발길 닿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귀신시리즈가 등장한다. 세상이 변해 올해는 디지털귀신까지 나올지 모른다.

나는 어린날 두가지 기억이 남아 있다. 하나는 반딧불이를 잡기위해 쏘다니다 생긴 일이고 또 하나는 할머니의 마중길에서 일어난 일이다.

반딧불이와 도깨비 불

여름이면 나는 반딧불이를 잡는데 정신이 팔려 밤이 깊도록 혼자서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손바닥위에 올려진 반딧불이의 꽁무니와 배에서 반짝이는 형광빛에 나는 번번히 넋을 놓았다. 어머니는 “노린내가 난다”며 싫어했지만 방안에서 호박꽃 호롱을 만들어 놓고 지켜보는 나와 동생은 마냥 좋기만 했다.

하루는 아랫동네에서 반딧불이를 잡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하기전에 대나무숲을 지나야 하는데 밤이면 항상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 다녔다. 깜깜한 밤 대나무가 바람에 부벼대며 나는 소리가 싫었고 집앞에 동네쓰레기장에서는 도깨비가 난다고 어른들이 항상 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단숨에 집까지 뛸 요량으로 크게 쉼호흡을 하고 일단 목표지점인 언덕위에 있는 집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발이 땅바닥에 붙고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집 뒤에는 정말 집채(잡으면 축구공 크기만할 것 같았다)만한 도깨비 불이 타 오르고 있었다.그 빛은 불덩어리 모양만했지 주변을 밝히지도 않았고 크기만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집 뒤에 우리밭이 있었는데 길이가 50미터 정도는 된다. 그 빛이 훌쩍 뛰더니 두번만에 밭을 가로질러 산 너머로 사라졌다.마음속으로는 엄마를 1백번도 넘게 불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행히 발이 움직였고 목소리도 터졌다. “엄마”하며 단숨에 집에 도착한 뒤 이불밑으로 숨었다.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도깨비 불 봤다”. 그날 후로 난 한 일주일정도는 야간출입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도 마루에 놓인 요강이 대신했는데 그나마 할머니가 대창문을 열어두고 불침번을 서야 했다.

할머니와 개여시

할머니의 무서운 이야기 대표작은 아류작까지 포함한 3편의 ‘장화홍련전’과, 지금의 ‘연이낭자와 버들도령’이었다.동생과 나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들 정도로 할머니는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어머니에게 혼날때마다 지켜주는 수호신이었고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호롱불이나 양등을 들고 밤길에 할머니를 마중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지금은 교회에 나가고 있지만 할머니는 한때 우리 섬마을 뿐만 아니라 거제에서도 꽤나 알려진 점쟁이였다.

섬이다 보니 정월부터 뱃 사람의 안녕과 1년 풍어를 기리고 집안의 평안을 비는 용왕굿과 안택이 많았고 심지어 돼지나 소가 아파도 할머니를 찾을 정도였다. 자연히 할머니는 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돌아오셨는데 그날도 할머니가 올 시간쯤에 양등을 들고 할머니의 마중을 나갔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니까 도깨비가 나온다는 동네 쓰레기장도 무섭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오실 길은 ‘몰굼부리’라는 언덕길 넘어야 하는데 말을 타고 장가가던 신랑이 말이 바닷가로 굴러 떨어지면서 죽었다는 전설때문에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일단 가다보면 할머니를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길을 재촉했고 다행히 옆 동네로 향하는 내리막에서 할머니를 만났다.할머니와 나는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렸고 말굼부리를 지날때쯤이었다. 말굼부리 위로는 (아이들을 단지에 넣어 묻은 곳)애장터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다시 아주 가깝게 들렸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조모 뒤에 무슨 소리 안 들리나”.

할머니는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라노 아무 소리도 안 들리거마는”.
“아이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잖아 아가 운다”.

“아이다 아무소리도 안난다” 하며 할머니는 갑자기 손으로 내 등을 떠밀듯이 하며 잰걸음으로 집까지 왔다.

“조모 진짜 아까 아무소리도 안 들리더나. 아 우는 소리 나든데”.
“노리(고라니)소리 것제”.

나는 다시 “진짜 이상한 소리가 났다”라고 하자.
할머니는 그제서야 “아 우는 소리는 모리것고 아까 우리가 올때 개여시(여우)가 따라왔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원래 개여시는 앞서 가던 사람이 뒤를 돌아보거나 놀래면 사람을 덮치거나 해친다. 몰굼부리서 부터 따라왔는데 니가 놀래낀가 싶어 말 안했다”.“마이 놀랬나 인자 겁 안내도 된다”.

나는 그 것이 지나가던 개 였어도 상관은 없다. 지금도 가끔 고라니 소리를 듣는데 분명 당시 그 소리는 고라니 소리는 아니었다. 그때 놀란 가슴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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