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주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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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보낸 내 젊음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대학을 지성의 산실로, 그리고 인생에서 필요한 모든 유익함을 가득히 채워줄 수 있는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는 요즘의 대학을 잘 알지 못하고,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대의 사람들 중 나와 같은 이가 많지 않았듯이, 요즘의 대학생들 중 어떤 이가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예전의 그 시절, 나는 그랬다.

마침내 대학에 합격을 한 후, 나는 마치 점령군처럼 대학 교정을 가로질러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던 낭만과 열정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때부터 지녀왔던 삶과 세상에 대한 의문을 말끔히 풀어버릴 수 있는 무한한 지식의 보물창고를 열기 위해서. 나는 대학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몇몇 동아리에 가입하고, 학교의 여러 건물들의 이름과 용도에 대해 알게 되고, MT를 다녀오고 하면서 나는 대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서서히 알게 되어갔다. 이제껏 미처 누려보지 못하던 보다 많은 자유와,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다 많은 기회와, 보다 많은 배움, 대학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 대학에서 원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찾아 여기저기 학교 안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다가, 마침내 나는 진정으로 내가 안착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로 도서관 한쪽 구석에 위치한 ‘교양도서실’이었다. 그곳은 마음대로 서고에 들어가서 필요한 책을 꺼내서 볼 수 있는 도서관의 조그마한 방이었다.

한 5000권쯤? 아니면 만권? 나는 천정까지 여러 줄로 겹겹이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그곳의 책들을 대충 살펴본 후 마음을 정했다. 여기다! 그래 이곳의 책을 깡그리 다 읽어버리자. 그리고 내가 품어왔던 세상에 관한 모든 의문을 마음껏 풀어보자! 그날 나는 다부진 목표를 정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이 책을 깡그리 다 읽어버리자!

무언가 목적이 생기면 사람은 의욕에 차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날 대학 생활을 바쳐야 할 목표를 찾았고, 다음날부터 목표를 향해 힘차게 돌진했다. 수업시간외에는 나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점점 빈도가 줄어드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었다. 친구들과의 이야기에서 무언가 새로운 의문을 찾아내면, 나는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서 세상의 새로운 비밀을 찾아내려 노력하였다.

처음. 몇 백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몰랐던 것, 잘못 알았던 것, 내가 까마득히 모르는 채 세상의 여러 똑똑한 사람들이 열심히 논쟁을 벌여왔던 것들을 읽어가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었다.

우리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을 몰라도 여전히 지구는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듯이, 나도 모르는 채 내 삶을 규정짓고 있던 것들에 대해 깨달아갔다.

조금씩 독서가 깊어지면서부터 책은 나에게 더 이상 해답만을 주지 않았다. 이젠 더 많은 의문을 주기 시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왜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었다. 고등학교 때 품어왔던 그 막연한 인생에 대한 의문은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질문의 폭 또한 보다 넓어져 갔다.

그리고 내 삶은 점차 책을 읽기 위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책을 통한 지식의 탐구는 내 젊은 시절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바람직한 인생이란 세상의 모든 유익한 지식과 진리를 알아야 하고, 그에 따라 건강하고 보람되게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라는 그리스적인 인문주의적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독파하고 바르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나는 점점 더 책에 파묻혀 갔다.

밤늦게 도서관에서 돌아와 책을 보다 잠이 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안경을 쓰곤 다시 책을 읽었다. 아침이 밝아오면 도서실로 향했고, 오후에 교양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도서관 주변의 벤치에서 다시 책을 읽다 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학과수업에도 점점 소홀해져 갔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에 비하면 전공공부라는 것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차츰 친구들이 그곳에 오면 항상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갔고, 후배들은 어지간한 교양과목 리포트쯤은 나에게 찾아오면 순식간에 해결된다는 알게 되어갔다. 그 무렵, 나는 문득 독서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읽어야 할 책이 더 많은데, 아직은 모든 의문을 다 풀지 못하였는데... 책 속에서 진정 원한 것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싫증의 원인은 관념의 과잉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독서가 삶의 이유는 아니었다. 책 속의 온갖 현학적인 내용들은 삶을 풍부하게 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 파묻혀 사는 사람의 삶을 좀먹어 간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꿈꾸던 그리스적인 인문학적 인간상이 아니었다. 지식은 삶을 풍요롭고 바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지식을 위해 삶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삶을 살아가면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 그쯤에 도달했을 때, 행동으로 삶을 살아가는 속에 독서의 내용을 다시 음미하고, 그러므로써 진정한 인식에 도달할 수가 있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랬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참 지식의 의미였다. 어느날, 나는 머릿속에 늘어가는 현학적인 생각들을 책과 함께 덮어 버리고, 나는 도서관을 떠났다.

삶은 도서관 밖, 햇살 가득한 곳에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으로, 노력으로, 하루하루의 인내로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나도 성큼 발걸음을 내딛어 그 삶에 합류했다. 삶을 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책 속에서 보았던 글들을 내 머리를 스쳐갈 때 나는 한번씩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그래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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