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조선인의 넋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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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조선인의 넋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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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수산 장편소설 <까마귀> 5권 펴내

 
   
  ^^^▲ 한수산 <까마귀> 표지
ⓒ 해냄^^^
 
 

"1945년 그 8월의 폭염 속에 썩어 나가던 피폭 조선인의 시신에 까마귀떼가 달려들었다. 살아서 헐벗었던 삶, 죽어서 새에게 뜯기면서 썩어간 주검들은 넘치는 빗물에 쓸려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일본의 화가 마루키 부부는 이 참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시신을 새카맣게 뒤덮은 채 뜯는 까마귀떼 사이로 희디흰 치마 저고리 하나가 떠가고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시체마저 차별받아야 했던 조선인. 시체까지도 차별했던 일본인. 아름다운 치마 저고리가 고향 조선을 향해 날아간다.'

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해 조금이라도 빨리 조국을 되찾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징용으로 끌려와 있던 조선인 원폭피해자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죽음은 무참했고, 그들은 순결했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로 소설을 쓰는 작가 한수산(57)이 일제 패망기 때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징용되어 끌려갔다가 나가사키에서 원폭에 스러져간 한인들의 비극적이고도 참혹한 삶을 다룬 장편소설 <까마귀>(해냄, 모두 5권)를 펴냈다.

"초고를 끝내던 날, 서재가 있는 남한강가에는 진눈깨비가 뿌렸다. 그 눈발 속을 걸었다. 처음 한국인 피폭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가사키를 찾았던 것이 1990년 여름이었다. 긴 세월이었다고 허망해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포기했고, 때로는 예정 없이 미뤄놓기까지 했던 시간들이었다. 건너야 할 강 하나를 이제 건넜다는 무심함으로 눈발 속에 서 있었다."

이 책은 작가 한수산이 1990년에 일본 나가사키 현장에서 취재를 시작하여 무려 15년이란 세월을 고스란히 바친 장편소설이다. 당시 일제의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에 대한 광기가 얼마나 극심했으면 작가가 작품을 탈고한 뒤 이런 말을 내뱉었을까. "고맙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 말뿐 가슴에 떠도는 것은 없었다"라고.

<까마귀>는 모두 5권으로, 제1부 '조국의 딸', 제2부 '분노의 밥', 제3부 '흙과 무지개', 제4부 '불타는 거리', 제5부 '푸른 수레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는 1944년부터 1945년 원폭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8월까지이다. 특히 이 시기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뒤 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하던 때이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하시마라는 지옥섬과 일본 군수공업체의 집결지인 나가사키이다. 하시마라는 섬은 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한 일제가 가혹한 노동착취로 악명을 떨쳤던 최악의 탄광지역이다. 하지만 나가사키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주인공들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잠입을 꿈꾸는 도시이다.

또한 나가사키가 있어 강제징용된 한인들이 지옥과도 같은 막장 속에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가사키는 일본 군수공업체의 집결지로써 미군의 원폭투하를 비껴갈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잉태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 소설 속에는 피폭 조선인들의 시신에 까맣게 달겨드는 까마귀처럼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친일파 윤두영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형을 대신해 징용을 가는 지상과 결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을 가진 우석, 징용으로 끌려간 자신의 남자를 기다리는 훈장댁 막내딸 서형, 우석과 비극적인 첫사랑에 빠지는 금화.

그리고 탄광 소요사건의 주범으로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되는 동진, 사기를 당해 지옥섬으로 흘러들어온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내였지만 탄광 노동자들이 큰형님처럼 믿고 따르는 명국, 명국의 친구로 징용을 피해,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가 함바집 오야붕 육손이의 눈에 들어 그의 부하가 되는 길남 등.

제1부 '조국의 딸'은 일제의 광기가 극에 달한 1944년, 강제징용으로 지옥의 섬 하시마로 끌려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한인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가족을 조국에 남긴 채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간 한인들은 지옥섬 하시마에서 끝없는 탈출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마침내 사랑이 싹트고….

제2부 '분노의 밥'에서는 가혹한 노동현실 속에서도 고국을 그리는 구슬픈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그와 더불어 육손이의 부하가 되었던 길남이에 대한 이야기, 동료들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본 뒤 하시마를 탈출하려는 명국이 나온다. 그러나 명국은 탄광에서 작업하던 도중 지반이 무너져 내려 탄더미에 깔렸다가 결국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되어… .

 

 
   
  ^^^▲ 한수산 <까마귀> 표지
ⓒ 해냄^^^
 
 

제3부 '흙과 무지개'는 하시마 탄광에서 집단으로 탈출을 결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탈출을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석은 사랑하는 금화로 인해 갈등을 거듭한다. 하지만 금화의 결단으로 우석과 지상, 필수는 탈출을 시도한다. 금화는 그들이 탈출하던 날, 경비병을 유인해 술에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방파제에서 뛰어내리던 우석은 그만….

제4부 '불타는 거리'는 하시마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나가사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가사키 또한 주먹밥조차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게다가 마침내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작전으로 인해 나가사키가 불타는 거리로 변하면서 민심이 점점 흉흉해진다.

제5부 '푸른 수레바퀴'는 마침내 원폭이 투하되어 죽음의 도시로 변한 나가사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45년 8월 9일 아침, 미국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데 이어 나가사키에도 원폭을 투하한다. 나가사키는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버섯처럼 피어오르고, 모든 것이 사라진 도시에는 검은 비만 내린다.

한수산의 장편소설 <까마귀>는 그동안 우리가 희미하게 알고 있었던 원폭투하의 진상을, 미군의 원폭투하로 인한 피해가 비단 일본인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전쟁과 원폭은 영원히 지구촌에서 사라져야 할, 절대악이라는 사실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 전쟁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의 무차별적인 이라크 공격에서 보아왔듯이, 전쟁은 바로 우리 코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한반도는 전쟁에 대한 위협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한편, <까마귀> 출간을 기념해 잠시 귀국한 작가 한수산은 현재 1년 예정으로 미국 UC 버클리 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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