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어떤 슬픔의 곡절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가장의 어떤 슬픔의 곡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휴일임에도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 주부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내는 그날 역시도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대학생 아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택배회사에서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새벽에 귀가하여 파김치가 되어 잠을 자야했음으로 해서 그처럼 휴일에 있어서도 저의 '유일한' 말동무는 여고생 딸아이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날인 토요일 저녁에 미리 딸아이에게 "내일 아빠랑 모처럼 영화구경 갈까?"라고 의중을 타진했지요. 하지만 녀석은 시큰둥해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더욱 몸이 달아서 딸아이를 졸랐습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내일 오전에 구경 가자꾸나, 아빠가 돌아오는 길에는 맛있는 것도 사 줄게."

하지만 저를 닮아서(이런 건 날 안 닮아도 되는데!) 평소에 고집이 센 딸아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싫어요, 더워서 저는 집에서 책이나 볼래요."

그래도 저는 다시 한 번 이젠 아예 애걸복걸까지 했습니다.

"남들은 다 봤다는 그 환상적인 제 2차의 '안면도 꽃 축제'에도 우린 못 가 봤잖아. 그러니 그러지 말고 우리 내일 가서 영화 보자~"

하지만 역시도 딸아이는 한겨울의 폭풍한설 만큼이나 그렇게 차디찼습니다.

"안 간다니까요."

나쁜 녀석, 일요일 아침이 되자 새벽 여섯시에 귀가한 아들은 아침을 대충 한 술 뜨고는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잠을 자 둬야만 밤에 또 아르바이트를 나갈 수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시간이 되어 아내가 출근을 서두르기에 이번엔 은근짝 아내를 회유했습니다.

"당신, 오늘 하루 쉬면 안 될까? 나랑 영화구경이나 가자구~"

하지만 아내 역시도 제 편은 못 됐습니다.

"오늘 무단 결근하면 나 짤려! 정이나 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라도 다녀오구랴."

"쳇~ 뭔 재미로 나 혼자 거길 간댜? 내가 홀애비여?"

아내가 집을 나선 후에 집안 청소를 대충 하고 TV를 시청하다가 그것도 이내 따분해서 이번엔 책을 꺼내서 봤는데 역시도 심드렁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딸아이 방으로 가서 "똑똑~" 노크를 했습니다.

"그만 자고 일어나렴~"
"지금이 몇 시인데요?"
"응, 열 시가 얼추 다 됐다."
"그럼 저는 더 잘래요."
"아침 먹고 영화구경 안 갈래?"
"어제 안 간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잖아요!"

이런 괘씸하고 야멸찬 녀석 같으니라구...! 아니 그래, 이 세상에서 달랑 단 하나 뿐인 네 아빠가 어제에 이어서 연 이틀 그처럼 애걸복걸을 하면서까지 너랑 함께 영화구경을 가자고 간청함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너는 그처럼 지독한 매멸참이더냐?!

여자의 한은 삼복더위에도 서리를 내린다는 말은 들었다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구나! 역시 '자식은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이 딱 맞는구나!

네가 어렸을 적엔 날마다 꼭(!) 이 아빠 곁에서만 자려고 그리도 난리법석을 피우더니만.. 그래서 네 엄마는 그러한 너를 몹시도 질투하곤 했었거늘. 비록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흘러 네 아빠가 이제는 불혹을 지나 지천명으로 가는 중간 계단에 있는 즈음이고 아울러서 머리에도 백발이 서서히 내려앉는 즈음이라고는 하나 하지만 네 아빠도 아직까지는 마음만은 젊다면 젊은 남자야, 이거 왜 이래? 정말.

그래서 지난 일요일은 천금의 휴일이었건만 하지만 저로서는 실로 무의미하게 그날 역시도 집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애꿎은 밥이나 축내는, 마치 행시주육(行尸走肉)의 돼지같은 존재로 자족하고야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왜 사니, 왜 살어?"(자문자답) 일요일 같은 공휴일이 저는 정말 싫습니다. 그리고 슬프구요... 일요일만 되면 홀아비(?)로 돌변하는 제가 할 일이 딱히 뭐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날 최근 출시된 비디오를 하나 빌려다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도래하는 낼 모레 제헌절 날도 쉬기는 하지만 저는 다시금 홀아비가 될까 벌써부터 두렵습니다. 이상은 40대 가장의 어떤 슬픔의 곡절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