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속 한국인들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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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속 한국인들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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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인사이트, 영상 아카이브 최초 발굴
KBS 사진.
KBS 사진.

KBS 다큐인사이트 제작팀은 그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비롯해 독일, 러시아, 일본 등 세계 곳곳에 나뉘어 보관돼 쉽게 접할 수 없던 한국 현대사 자료를 수집·공개하는 영상 아카이브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지난해 ‘만삭의 위안부’ 영상 발굴을 시작으로, 1900년대 한반도의 생활상을 담은 <김씨네 이야기>,한국전쟁 당시 촬영된 영상들을 볼 수 있는 <1950 미중전쟁>, 올해 5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아카이브 <오월의 기록>을 시청자에게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될 <태평양전쟁의 한국인들> 역시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한국인의 모습이 담긴 <태평양전쟁의 한국인들>은 당시 강제 동원된 한국인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최초로 발굴된 기록이기도 하다. 그동안 태평양전쟁 시기 한국인들의 강제 동원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아직 강제 동원된 인원, 지역, 피해상황 등에 대한 총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될 <태평양전쟁의 한국인들>이 발판이 되어 역사 진실 규명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길 바란다.

길버트 제도에 위치한 타라와 환초.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미군의 대규모 함포와 항공기의 무차별 공격이 있었던 곳이다. 76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로 미군 1,696명이 사망했고, 장교 1명과 사병 16명을 제외한 모든 일본군이 사망했으며 강제 동원된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길버트에 동원된 조선인 군무원은 1,091명. 하지만 전투가 끝나고 150여 명의 조선인만이 살아남았다.

마셜 제도의 콰잘레인 역시 400~600여 명의 조선인이 군속으로 동원된 지역이지만 그중 165명만이 살아남아 미군의 포로가 됐다. 이오지마 역시 일본 해군 군속으로 일했던 한국인들이 미군의 포로가 된 곳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타라와, 콰잘레인, 이오지마 지역에서 촬영한 기록을 통해 조선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사이판과 티니안이 1944년 7월 미군에 점령되면서 그곳에 남겨진 한국인들은 각각 사이판수용소와 티니안수용소에 수용됐다. 이들은 수용소 내에서 행정, 교육, 위생, 취사와 같은 노동을 통해 미군에게 돈과 식량을 받아 생활했다. 특히 이번에 최초로 공개될 자료 중 미 해병대가 촬영해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해오던 사진들은 한국인 여성이 수용자들에게 줄 주먹밥을 만들고 있거나, 한 쌍의 조선인 부부가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 등 수용소 내 생활을 엿볼 수 있다.

30일 목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는 먼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간난신고의 생활을 견딘 조선인들의 삶이 <태평양전쟁의 한국인들>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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