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아직 호기심 많은 아이가 숨어 있다
내 속엔 아직 호기심 많은 아이가 숨어 있다
  • 김광진
  • 승인 2003.07.10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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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보지 못한 과학 탐험의 세계

초등학교 시절 누가 내 꿈을 물으면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대답했다. “과학자요” 누가 만약 “무슨 과학자?” 하고 물었다면 이번에는 물을 때마다 다른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우주과학자, 심해탐험가, 곤충학자, 비행기 만드는 과학자…. 나의 대답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순진하게도 원자탄도 만들고 싶었고, 때로는 배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집 다락방 한 귀퉁이에 ‘연구실’을 만들어 놓았었다. 개미집 같은 것은 물론이었고, 집에서 꽤 떨어진 바닷가까지 초등학생이 걷기엔 제법 먼 길을 걸어가서 지렁이며, 불가사리 같은 것을 채집해 와선 수조에 넣고 관찰하기도 했다. 밤에 별이 반짝이면 볼록렌즈 두개를 양손에 들고 이리저리 조절을 해가면서 망원경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집에는 과학책이 많았었다. 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아는 부모님은 교육자답게 제법 많은 책을 구해주셨다. 그러나 어린나의 불타는 탐구열은 그 정도의 책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친구 집으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와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 집에 있는 책이 목표였던 것이다.

내가 친구에게는 관심도 없고 친구의 책과만 노는 사이에 재미가 없어진 친구는 잠을 자거나 밖으로 놀러나가고,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없는 방에 당연히 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해가 기울고 어두워져서야 갑자기 나타나서 친구의 어머니에게 ‘잘 놀다가 갑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가는 나의 행태는 동네에서 한동안 화재거리가 되었었다.

시간이 지난 후 어느 정도의 원리를 이해하게 된 나는 또 다른 분야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중학교의 도서관은 과학에 대한 내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원래 책이 대출되지 않았지만, 도서관이 닫는 시간까지 책을 붙들고 않아있던 나에게는 예외적으로 책을 집에서 빌려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1년인가 지났을까. 도서관의 얼마되지 않는 과학책들을 다 섭렵하고 나서는 시내로 나들이를 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헌책방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주동안 모든 용돈으로 줄줄이 늘어선 헌책방에서 돌아다니며, 책을 가방 하나 가득히 사서 집으로 가져오는 것이 매주 토요일마다의 일과였다.

가장 열심히 사서 모은 책이 ‘학생과학’이었다. 그 책은 당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일한 과학 잡지였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한권도 빠뜨리지 않고 매달 나온 잡지를 사모아서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 당시 나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창간호를 포함해서 최근호까지 한권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모았을 때의 기쁨이란!

물론 단순히 책을 사서 모으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숙독하고 나선, 하나씩 직접 내손으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당시 유행하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조립을 위한 각종 부품이 즐비했고, 납땜인두에 손을 데는 건 다반사였다.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나는 모형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무수히 나무를 깍고 종이를 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로켓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추친체를 만들기 위해 화약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책에서 읽은 대로, 유황, 초산, 숯가루 등은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로켓 본체였다. 종이로켓을 만드는 것이 제일 쉬웠다. 로켓 본체가 가볍기 때문에 쉽게 날아오르고 제법 멀리 날아가긴 했는데, 조금 하늘에 올라가면 그만 종이가 열에 타서 터져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플라스틱 막대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결국은 다소 무거워도 금속성 본체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로켓의 본체가 무거워져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추진체가 필요했다. 마침내 좀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화약이 필요했다.

여러 번의 실험이 거치고 난 후, 나는 어렵게 보다 강력한 화약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늘 높이 내가 만든 로켓을 날려보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난 나는, 그날 바로 어렵게 구한 조그만 알루미늄 파이프에 화약을 담고 불을 붙였다. 로켓은 나무를 미끈하게 갈아서 만든 활주로를 미끄러져 하늘로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켓은 금새 바닥으로 떨어져 동네 골목을 이리저리 비집고 다녔다. 로켓 안에 든 화약이 다 타버릴 때까지 이집, 저 집에 부딪히고, 길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후에야 시커멓게 타버린 로켓은 흙바닥에 멈추어 섰고, 내 주위에는 놀라서 뛰어나온 동네어른들이 가득 둘러싸고 있었다. 그날로 나의 과학실험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과학을 향한 내 꿈은 한동안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얼마가 지나지 않았을 때, 문과 이과를 정하기 위해서 장래의 꿈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과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면 고분자 과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나는 결국 그 때의 꿈과는 다른 길을 걷고 말았다. 어릴 적의 꿈에 따라 이과를 택했지만, 나는 고분자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학이랑, 화학에 대해서는 유독 흥미가 없었던 때문이다.

오랜 후, 다른 전공을 선택해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전공기초 선택과목 중에 고분자학에 대한 과목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향수 때문에 덜컥 그 어려운 고분자학을 선택해 버리고 말았다. 그 감상적인 선택 때문에 한 학기동안 무척 고생을 했지만 덕분에 고분자학이란 것을 조금의 맛은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목을 선택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간이 나면 우주과학, 심해탐험, 천체물리학에 관한 책을 곧잘 본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동심의 세계에 돌아가 흡족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그때 읽었던 책의 내용에 비해 과학의 내용이 많이 진전된 것을 깨닫고 놀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직은 어려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욕심에 예전에 읽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책들을 사서 모아놓기도 한다.

그렇다. 아직도 내속에는 어릴 적의 그 호기심 많은 아이가 숨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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