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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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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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백로갈매기가 되어 '어머니의 바다'를 찾아 멀리 날고 싶다.



나의 고향은 충청도 산골 마을, 그곳에는 바다가 없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바다를 구경하시지 못하고 뒤늦게 노인이 되어 나에게 바닷가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쪽빛 바다와 포구의 아침이 보고 싶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노래 소리와 뱃고동소리, 조약돌과 바다 안개도 소녀처럼 보고 싶어하셨다. 그런 어머니에게 멋있는 바다를 보여 드리고 싶어 찾아간 곳이 강릉 경포대다. 푸른 동해 바다와 해송림, 백사장, 경포호수가 어우러져 튀어난 경관을 이룬다.

근처에는 오죽헌, 선교장, 방해장, 해운정, 금란정, 객사문등이 있다. 경포대는 해가 솟아오르는 광경이 장관이고, 밝은 달밤에는 하늘과 바다, 호수와 술잔에 뜬 네 개의 달을 한꺼번에 볼 수가 있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바닷가 구경을 처음 하시는 어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시며 멀리 수평선을 바라 보셨다. 신기에 찬 눈으로 오랫동안 바닷가를 보시다가 나는 갈매기를 보고 백로가 난다고 하셨다. 우리 고향에서 본 백로와 같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바다의 백로는 잘 울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파도소리에 묻혀서 어두워진 귀에 잘 들리지 않아서다. 울지 않는 백로, 갈매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으시며 어지럽다고 했다. 어머니의 어지럼증은 언제나 있었지만 평생에 처음 보는 바닷가에 와서 어지러워 몸을 가누시지 못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 내가 어머니에게 그렇게 바다에 가보자고 졸랐지만 이제야 오셔서 원을 푸는 일인데도 어지럼증 때문에 바닷가가 이내 싫어지신 모양이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어지럼증이 조금 나아지셨는지 조약돌을 하나둘 주어들고 손에 만지시더니 멀리 던져 보시려고 했지만 잘 안되었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바닷가가 별것 아니라고 하셨다.

바닷가에 오셔서 제일 먹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징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오징어를 사서 드렸더니 한 가닥 찢어 조금 씹어보시다가 치아가 없어 씹을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가슴이 저며왔다.

하루종일 멍한 눈으로 일행들을 허둥지둥 따라다니시던 어머니는 바닷가에서 나는 비린내 때문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못 했다. 삶은 고구마가 잡숫고 싶다고 했다. 하필 바닷가에 오셔서 집에서도 흔하게 드실 수 있는 삶은 고구마가 잡수시고 싶은지 이해가 안되었다.

허둥지둥 부둣가의 집들을 뒤져서 삶은 고구마를 사왔다. 한 개를 맛있게 잡수시고는 요기가 되었다고 하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삶은 고구마가 속이 편하다고 했다. 나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뭍에서 콩밭을 매며 사신 어머니에게 바다 구경은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콩밭이 바다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매일 콩밭을 찍고 사셨으면 되었지 바닷가에 오셔서 콩밭을 그리워하셨다.

멀리 바다를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처음으로 바다 구경을 시켜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평생을 그리시던 바다구경이지만 빨리 싫증을 내시며 집으로 가시자고 했다. 같이 구경온 동네사람들과 헤어져 버스 터미널로 갔다. 차표를 끊는 동안에 어머니는 힘이 드셔서인지 대합실에 주저앉아 계셨다.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눈도 크게 못 뜨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고무신을 벗어 양손에 들으셨다. 그리고는 콩밭 고랑을 다닐 때처럼 맨발로 버스에 오르셨다. 버스 의자에 털썩 주저 앉자마자 아픈 발을 작은 손으로 주물렀다. 동그란 딱정벌레가 웅크리고 앉아 먹이를 쪼는 것 같이 보였다.

힘이 들어서인지 움푹 패인 눈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닷가의 작은 산에는 단풍잎들이 붉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산자락 끝에 보이는 포구에는 어머니가 보신 백로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수평선 멀리에는 조그만 배가 잠을 자고 있는 듯 머물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무관하게 어머니는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계셨다.

버스가 구부렁 비탈길을 오르며 체질을 하자 갑자기 잡수신 것을 토해 냈다. 치아가 없어서 오물거리던 오징어 다리에 체하신 모양이다. 꺼욱거리며 우는 갈매기소리를 내며 먹은 것을 토해 냈다.

휴게소에 도착하여 구급약을 사들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계셨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백로 갈매기가 보여서 어지럽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앞 논에서 우렁이 쪼는 백로를 보면 어지럼증이 난다고 하셨다.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무슨 일인지 백로 한 마리가 앞마당에 와서 드러누워 죽어있었다.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 이후로 백로만 보시면 어지럼증이 나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어지럼증이 왜 하필 버스 안에서 나는지 난감했지만 백로 갈매기를 생각하고 계셔서인 것 같았다.

바다를 처음 보신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셔서 무서운 백로 갈매기병을 앓으셨다. 어머니가 처음 보신 바다는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갈매기와 뱃고동소리, 바다의 물안개와 파도소리도 어머니에게는 아들의 학비를 만들어 주는 콩밭만 못하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경포대로 '어머니의 바다'를 찾아간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나에게도 어머니처럼 어지럼증이 났다. 어머니와 같이 보았던 노송나무가 장승처럼 보이고, 하얀 백사장이 콩밭으로 보였다.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는 갈매기가 우리 집 앞마당에 죽어 있었던 백로로 보이기도 한다.

거울처럼 물이 맑다하여 붙여진 경포호수와 해송림, 해당화와 벗 나무가 계절 따라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만 나는 바닷가에 갈 때마다 그런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같이 보았던 그 풍경을 더 그리워한다.

'어머니의 바다.'
'나의 꿈속에서 언제나 살아 움직인다.'

바닷가에 가면 백로갈매기가 풀을 뜯는 어머니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 보이고. 오징어를 콩 풀처럼 뜯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다 안개 속에서 만나게 된다.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시려고 허리를 펴시는 모습도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마리의 백로 갈매기가 되어
어머니의 바다를 찾아 멀리 날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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